
완성차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적으로 차량 판매 이후 고객과의 관계가 끊어졌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충전비 지원, 무상 점검 등 차량 관리부터 중고차 거래, 차기 차량 구매까지 아우르는 ‘고객 생애주기 관리 전략(생애주기 전략)’이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차량을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량의 생애 전반을 관리하며 고객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시대가 도래한 모습이다.
완성차 업체들의 주요 수익원은 전통적으로 차량 판매에 집중됐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기차로의 전환, 소비자 니즈의 다변화, 차량 보유 기간 증가 등 요인으로 인해 단발성 판매만으로는 수익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특히 전기차는 구조상 내연기관차보다 정비 수요가 적어 정비 구독 서비스나 중고차 인증 판매 등 새로운 방식의 고객 접점과 수익 구조가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차량이 폐차될 때까지의 평균 생애주기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자동차의 평균 폐차 주기는 16년으로, 2000년의 8.3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처럼 차량 보유 기간이 길어지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단기적인 판매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고객 관계 및 브랜드 충성도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생애주기 전략은 차량 구매 이후의 관리에 그치지 않고, 고객이 브랜드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차량 처분과 재구매까지의 전 과정을 제조사가 설계하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는 차량을 넘어 ‘고객과의 관계’를 상품화하는 것으로, 단순한 사후 관리 수준을 넘어선 전략으로 평가된다.
이미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생애주기 전반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테슬라는 차량 판매 후에도 OTA(Over-The-Air,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충전 인프라까지 직접 운영하며 고객과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테슬라는 FSD(Full Self-Driving, 완전자율주행) 기능을 구독 서비스로 제공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는 지난 6월 신형 ‘넥쏘’를 출시하며, 구매부터 보유, 중고차 판매까지 전 과정을 통합 케어해주는 ‘넥쏘 에브리케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은 수소 충전비 지원, 무상 점검 서비스, 중고차 잔존 가치 보장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현대차는 또한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통해 중고차 판매까지 가능하게 했다.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통해 판매되는 차량은 외관 및 성능 이상 유무까지 확인하고 수리 후 출고되기에 고객들은 안심하고 차량을 구매할 수 있다.
기아는 지난해 6월부터 전기차에 한해 충전, 케어, 보장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e-라이프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해당 패키지에는 공동주택 충전 컨설팅, 전기차 화재 안심 프로그램, 인증중고차 트레이드인 등의 혜택이 있으며, 구독형 충전 요금제, 충전 로밍 서비스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기아 역시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통해 중고차 판매까지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이 구독 서비스, 로얄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BMW 코리아는 2022년부터 구독형 차량 관리 프로그램 ‘BMW 서비스케어 플러스’를 운영하며 AS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차량 인도일로부터 5년이 지나 소모품 관리 보증이 만료된 고객도 안심하고 차량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니코리아 역시 지난달 고객의 안전한 운행과 편리한 차량 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선제적 차량 관리 서비스 ‘프로액티브 케어’를 도입했다. 자동차 관리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용품 구매 혜택으로 고객 경험을 확장하는 사례도 있다. 볼보자동차코리아가 지난 5월부터 운영하는 '볼보 익스클루시브(Volvo Exclusive)'는 카시트, 아웃도어, 주듀 등 다양한 브랜드와 제휴해 볼보 오너에게 할인 쿠폰 등을 제공하는 로열티 프로그램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전략이 단순한 편의성 제공을 넘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고 장기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런 자동차 기업들의 케어 전략 같은 경우는 고객 생애 가치 LTV(Life Time Value)를 높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차를 구매하기 전 시승부터 구매, 관리, 판매까지 전 차원에서 관리를 도와주면 소비자로선 평생 그 브랜드에 충성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올 케어’ 전략이 단기적 매출 확대를 넘어, 장기적으로는 차량 판매 방식 자체를 변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자율주행차 시대가 본격화되면 차량이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서비스 플랫폼’으로 자리 잡게 되고, 이를 통해 제조사는 차량 생애 전반에서 꾸준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호근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완성차 기업들이 중고차 인증 판매까지 진행하며 중고차 가격이 높아졌고, 이는 소비자들이 신차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요인이 됐다”며 “신차 가격이 다소 올라가더라도 차량 보증금으로 인해 중고차를 되팔 때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전체 차량 가치가 상향 조정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