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죄·전염병까지…글로벌 ‘백신 불신’ 확산

정치·범죄·전염병까지…글로벌 ‘백신 불신’ 확산

백신 음모론자, 美 CDC서 총기 난사
캐나다서 홍역 대규모 확산…예방접종 꺼려
美 보건장관, mRNA 백신 개발 계약 취소
“반백신 정서, 국가 보건안보까지 위협”

기사승인 2025-08-12 06:00:10
서울의 한 병원에서 시민이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전 세계적으로 백신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 백신은 질병을 예방하고 전파를 차단하는 핵심 수단이지만, ‘백신 불신론’이 급격히 퍼지며 산업 경쟁력과 국가 보건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백신 불신이 범죄로 이어지는 등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형성된 ‘반(反)백신’ 정서가 퍼지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 30대 남성이 애틀랜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본부 건물 밖에서 총기를 난사했다. 범인은 CDC 건물로 들어가려다 경비원들에게 제지당한 뒤 건너편 약국으로 이동해 총격을 가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총탄에 맞아 희생됐다. 범인은 평소 자신의 건강 문제 원인이 코로나19 백신 때문이라는 음모론에 빠져 있었으며, 정신 질환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을 맞지 않아 홍역이 대규모로 유행한 사례도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올해 3800여명의 홍역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중 대부분은 어린이와 영아로, 캐나다보다 인구가 약 9배 많은 미국의 확진자 수(약 1300명)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홍역은 폐렴, 뇌염,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 질환으로, 백신을 접종하면 예방이 가능하다.

홍역 확산의 배경으로는 낮은 예방 접종률이 꼽힌다. 지난 2023년 기준 국내 홍역 2차 예방접종률은 96%에 달하지만, 전 세계 예방접종률은 74%에 그쳤다. 캐나다 홍역 확산의 발단이 된 건 지난해 말 뉴브런즈윅주에서 열린 종교 공동체 메노나이트의 대규모 집회다. 당시 집회에서 감염된 이들로 인해 접종률이 낮은 온타리오주의 남서부 지역에 빠르게 홍역이 확산했다. 메노나이트 공동체는 종교·문화적 이유로 예방접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백신 플랫폼으로 잘 알려진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 개발과 관련된 5억달러(한화 약 6948억원) 상당의 연구 지원과 계약을 취소했다. 최근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해당 백신이 코로나19나 독감 같은 호흡기 감염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데이터에 따라 22건의 mRNA 백신 개발 투자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미국 보건부는 지난 5월에도 제약사 모더나와 체결한 6억달러(약 8340억원) 규모의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 계약을 철회했다. 모더나의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도 mRNA 기반 백신이다.

미국 애틀랜타 질병통제예방센터. AP, 연합뉴스

케네디 장관은 대표적 백신 불신론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지난 2월 말 미국 텍사스주에서 홍역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6살 아이가 숨지고, 3월 초 홍역 감염이 250건에 달한 것과 관련해 케네디 장관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우리 어렸을 땐 다 홍역에 걸렸다. 생선 간유, 비타민A로 기적적 치료가 가능하다”며 백신이 아닌 대체요법을 권했다. 이후 4월 초 또 다른 어린이가 홍역으로 숨졌지만, CDC 대변인은 “백신 접종의 잠재적 위험과 이점에 대해 알아야 한다”면서 사태의 위험성을 축소했다.

트럼프 정부가 재집권하며 세계보건기구(WHO)를 탈퇴하는 등 미국 백신 정책은 급변하고 있다. 식품의약국(FDA)의 백신 책임자를 쫓아내고, 코로나19 추가 접종 정책을 비판했던 사람을 대신 앉혔다. 지난 6월엔 17명의 CDC 자문위원회 위원 전원을 빼고 대신 반백신 단체 운동가들이 포함된 새 위원회를 꾸렸다.

반백신 정서는 극우 성향 정치인들의 정치적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일본 극우 성향의 참정당은 백신 음모론을 내세워 20~30대 젊은층의 지지를 끌어 모았다. 참정당을 이끄는 가미야 소헤이 대표는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반백신 메시지를 퍼트리며 유명세를 얻었다.

전문가들은 반백신 정서가 보건의료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우주 고려대 의과대학 백신혁신센터 석좌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진정되면서 백신 부작용 우려가 부각되고, 정치와 음모론이 결합해 백신 불신이 확산했다”며 “케네디 미국 보건부 장관의 우려스러운 조치들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말라리아, 결핵 등 차세대 백신 개발에도 악영향을 미쳐 국가 보건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석좌교수는 “백신 불신은 국경을 넘어 확산하는 만큼 전문가, 보건당국, 언론이 백신에 대한 근거 기반의 정보와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면서 “팬데믹은 인명 피해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주는 만큼 정부뿐 아니라 기업, 민간이 백신 교육과 신뢰 회복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동남아 등으로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오면서 국내 홍역 환자가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과 관련해선 “국내에서 홍역 같은 퇴치 질병도 예방접종률이 낮아지면 언제든 재유행할 수 있다”며 적극적 백신 접종을 권고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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