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와 정부, 학계가 내란 등 국가폭력 범죄로 대물림된 불법자금을 끝까지 추징하는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제기하며,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국가폭력범죄로 인한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총장이 좌장을 맡았다. 최근 박 의원은 ‘범죄수익은닉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내란 등 국가폭력 범죄의 경우 당사자가 사망하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되더라도 범죄수익을 끝까지 추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박재평 충남대 로스쿨 교수는 “공권력의 조직적 개입 등으로 실체가 드러나기 어려운 국가범죄처럼 기소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 범죄 수익을 환수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성환 법무부 국제형사과 검사도 “범죄 수익의 해외 유출이 많은데 확정판결까지 기다리면 실효적으로 환수가 어렵다”며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법무부도 올해 업무보고에 독립몰수제를 반영해 적극 추진 중”이라며 “독립몰수제는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태국·페루 등 보편적으로 도입한 필수 제도다. 국가 폭력범죄 뿐만 아니라 마약, 금융사기 등 민생침해 범죄까지 독립몰수제 도입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추징금 2628억원을 완납한 것으로 알려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지난해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에서 904억원의 비자금 흔적이 담긴 ‘김옥숙 메모’가 증거로 제시돼 수면 위로 떠오른 바 있다.
노 관장은 “부친의 300억원이 SK에 흘러가 그것이 SK를 키웠다”고 주장하면서 해당 300억원의 가치가 현재 기준 1조3808억원에 이른다는 항소심 재판부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강성필 민주당 부대변인은 “노태우 비자금을 재산분할 근거로 삼아 노소영에게 1조3000억원을 주는 것은 국가가 불법비자금을 제도권으로 인정해준 것”이라며 “재산분할이 아닌 국고로 환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비자금 환수를 두고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역사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강 부대변인은 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의 취지에 찬성하는 비율은 85%에 달한다. 이 가운데 소급 적용을 통해 원금과 수익까지 모두 적극 환수해야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한다”고 전했다.
허연식 5.18기념재단 위원은 “과거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 신군부 비자금에 대한 유의미한 제보들이 있었지만 입법적 한계로 조사에 착수하지 못했다”면서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지금이라도 실현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국회의 실질적인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간담회 축사를 통해 해당 비자금 환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대표는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며 “부정한 자산을 환수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이고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축사에서 “노태우 일가의 900억원대 추가 비자금 정황이 드러났지만, 추징금 완납을 이유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고 있다”며 “범죄수익을 효과적으로 환수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12·3 불법비상계엄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해 부정축재 재산을 끝까지 환수해야 한다”며 “관련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