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년간 가게 운영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에요. 바로 문 앞에 공사판이 펼쳐진다니요.”
서울 마포구의 상징적인 거리 ‘레드로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모(58)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우려하는 ‘공사판’은 부천 대장지구와 홍대입구역을 잇는 광역철도 ‘대장홍대선’의 종착역이다. 2031년 개통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 착공 예정인 이 역의 출입구가 레드로드 중심으로 계획되자, 6년간의 대규모 공사로 인한 상권 붕괴와 안전 문제를 우려하는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상인들로 구성된 ‘대장홍대선 레드로드 역사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이들은 토지 경계 측량 표식을 따라 청테이프를 붙여 예상 공사 범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차도와 인도를 가리지 않고 길게 이어진 테이프는 일부 상점의 출입문 바로 앞까지 뻗어 있었다. 비대위는 “공사 가림막이 설치되면 성인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보행 환경이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4년째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최차수 비대위원장은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홍대 거리의 심장에서 공사를 강행하면 상권은 물론, 버스킹으로 대표되는 홍대만의 문화예술 생태계까지 무너질 것”이라며 "실시설계를 앞두고도 인근 상인들과 단 한 차례의 협의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관할 지자체인 마포구 역시 심각성을 인지하고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마포구가 자체 실시한 교통영향평가 용역 결과, 공사가 진행될 경우 주말 교통상황은 ‘E등급(기준 미달)’, 핼러윈 등 축제 기간에는 ‘F등급(기능 마비)’을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안전사고 위험이 극도로 높아진다는 의미다.
이를 근거로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보행 흐름을 효율적으로 분산시키고 공간 확보가 용이한 홍대입구 사거리로 역사 위치를 이전할 것을 국토교통부에 강력히 요청했다“고 밝혔다. 마포구는 지난 5일 국토교통부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이러한 대안을 제시했으며, 국토부로부터 ”요청 사항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국토교통부와 사업 시행사인 현대건설 측이 해당 위치를 선정한 데에는 승객의 환승 편의성과 공학적 효율성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기존 2호선 및 공항철도와의 최단 거리 환승을 구현하고, 노선 굴곡을 최소화하여 공사 기간과 비용을 절감하려는 취지로 분석된다.
하지만 홍대의 문화적·상업적 상징성과 극심한 인파 밀집 지역이라는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서울시 인파관리지원시스템에 따르면 레드로드 일대는 이미 ‘주의’ 단계의 밀집도를 자주 보이는 곳이다.
수도권 교통 편의 증진이라는 공익과 지역 상인의 생존권 및 시민 안전이라는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 국토교통부가 마포구와 상인들이 제기한 대안을 어떻게 검토하고 최종 결론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