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순자산총액 220조원을 넘어섰다. 매년 수십 종의 신규 ETF가 쏟아지고 있지만, 반대로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해 상장폐지 되는 상품도 속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몇 가지 기본 원칙만 지킨다면 여전히 ETF가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올 들어 26개 ETF 상장폐지...작년 총 51개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날까지 상장폐지된 ETF는 총 26개에 달한다. 이는 2022년 6개, 2023년 14개에 이어 지난해 무려 51개가 상장폐지된 데 이어 증가세가 이어진 것이다. 대체로 거래량 부족 등으로 시장에서 외면받으며 정리된 경우가 많았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순자산 규모 △유동성 △추적오차 △거래가격 괴리율(시장가격과 순자산가치의 차이) 등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특히 순자산총액이 50억원 미만인 ETF는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 거래소는 순자산 50억원 미만이거나 최근 6개월간 일평균 거래액이 500만원 미만인 ETF를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이후 조건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다.
실제로 지난달 1일 현대자산운용의 ‘UNICORN 생성형AI강소기업액티브 ETF’가 순자산총액 50억원 미만으로 관리종목에 지정됐다. 현재 순자산 50억원 미만 ETF는 총 51개로 전체 ETF(1012개)의 약 5%가 상장폐지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시장의 외면을 받는 이러한 상품을 흔히 ‘좀비 ETF’라 부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좀비 ETF’의 확산 배경으로 자산운용사들의 과도한 경쟁을 꼽는다.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트렌드를 따라가며 테마형 ETF를 무분별하게 출시하다 보니 부실 상품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메타버스 ETF, 코로나19 ETF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 초창기에는 유행을 쫓는 테마형 ETF가 많았고, 이런 상품들이 대거 상장폐지됐다”며 “최근 들어선 산업 성장성을 보고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용사 입장에선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으면 조건을 조금 바꿔서라도 내 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치열한 시장 속 도태 상품 ‘자연스런 현상’...투자자 손실 가능성 낮아
일각에서는 경쟁 시장에서 도태되는 상품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특히 ETF가 상장폐지되더라도 투자자가 손해를 볼 가능성은 적다는 점에서 크게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ETF는 상장폐지 시 운용사가 청산 기준일의 순자산가치(NAV)만큼 현금화해 지급한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해 도태되는 상품이 생기는 건 시장의 자연스러운 원리”라며 “미국의 경우 3000~4000개의 ETF가 사실상 거래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ETF는 기초자산을 별도 신탁계좌에 보관하기 때문에 ‘좀비기업·한계기업’과는 다르며 ‘저유동성 ETF’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짚었다.
또한 단순히 거래량이나 총자산 규모만으로 부실 ETF라고 단정 짓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원자재 ETF처럼 특정 시점에 전략적 수요 대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은 평소엔 거래가 적더라도 필요할 때 가치가 드러난다”며 “낮은 거래량 자체가 반드시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비용 부담 운용사가 고민...“투자 시 괴리율·거래량 체크 필요”
투자자보다 오히려 부담은 운용사 측에 더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치열한 경쟁 탓에 보수가 낮아진 상황에서 상품 운용 비용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운용사들은 손익에 관계없이 상품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투자자는 괴리율이 높거나 거래량과 순자산총액이 적은 ETF를 피하면 여전히 ETF 투자는 유효하다”고 전했다.
괴리율은 시장가격과 ETF가 보유한 기초자산의 순자산가치(NAV) 사이의 차이를 비율로 나타낸 것으로 ETF 가격이 적정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다. 괴리율이 ‘+’면서 수의 크기가 커지면 그만큼 고평가된 상태임을 뜻한다. 반면 괴리율이 ‘-’이면 저평가된 상태다. 거래량이 적은 ETF는 유동성 문제로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어 “운용사들간의 경쟁 심화로 운용 보수는 낮아지고 수익률 제고를 위해 선제적으로 리밸런싱을 한다. 개인 투자자가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을 전문가들이 하기 때문에 오히려 투자자에겐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 역시 “거래량이 적은 ETF는 시장에 영향력도 거의 없고 특별히 피해를 입는 특정 주체도 없다”며 “오히려 운용사간 경쟁 심화로 보수가 낮아지고 서비스 비용이 줄어드는 측면에서 개인 투자자에게는 긍정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