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27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정재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한 전 총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내란 우두머리 방조 및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공용서류 손상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에 대해 영장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써 한 전 총리는 ‘헌정사상 첫 구속 전직 총리’라는 불명예는 피했지만, 엘리트 관료 출신 정치인의 몰락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속 위기 넘긴 기각 배경은
정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 사유로 “중요한 사실관계와 피의자 행적에 대한 법적 평가와 관련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어 한 전 총리가 수사 과정에서 협조적 태도를 보여왔으며, 현재 지위와 확보된 증거, 수사 진행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특히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한 행위가 곧바로 적극적 내란 방조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위증 혐의는 사실상 시인한 만큼 구속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전직 총리 사법 처리 사례 보니
전직 국무총리가 형사 절차에 연루된 사례는 헌정사에서 손에 꼽힌다. 대부분 퇴임 후 정치자금이나 기업 자금 수수 혐의와 같은 개인 비리 사건이었다.
전직 총리 중 가장 먼저 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총리는 장택상 전 총리다. 그는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대통령 입후보 방해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장면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 시절 ‘이주당 사건’으로 1962년 군사재판에서 징역형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거물급 인사로 통하는 김종필 전 총리는 1967년 선거법 위반, 2002년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2차례 조사를 받았다. 또 6·13 지방선거에서 삼성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한동 전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됐지만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이해찬 전 총리는 국회 광주특위 ‘가짜 사진’ 사건과 총리 시절 ‘3·1절 골프 파동’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회창 전 총리는 2003년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으나 입건되진 않았다.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한명숙 전 총리가 유일하다. 한 전 총리는 두 차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1심 무죄를 받았으나,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일부 유죄가 인정돼 2015년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이처럼 과거 전직 총리 사건이 주로 개인 비리에 그쳤다면, 한 전 총리의 내란 방조 혐의는 헌정 질서를 뒤흔든 국가적 범죄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이번 영장 기각은 전직 총리 사법 처리의 연장선이 아닌 향후 역사적 평가와 정치적 파장을 가를 분기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