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새로운 바둑·장기 메카 ‘종묘광장공원’

노인들의 새로운 바둑·장기 메카 ‘종묘광장공원’

기사승인 2025-08-28 16:33:39 업데이트 2025-08-28 16:34:12
‘대체 공간으로 이동한 어르신들’
탑골공원에서 장기·바둑 금지 이후, 많은 어르신들이 인근 종묘광장공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곳은 자연스럽게 노인들의 새로운 여가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28일 오후 100여 명이 종묘광장공원 나무 그늘에 모여 장기와 바둑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단속이 이어질 수 있다며 노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광장공원. 무더위 속에서도 희끗한 머리의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바둑과 장기에 몰두했다. 바둑판 뒤편에서는 훈수를 두는 노인들까지 어우러져, 대략 100여 명이 하루 종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종묘광장공원이 붐비기 시작한 건 지난달 말부터다. ‘노인들의 성지(聖地)’로 불리던 탑골공원에서 바둑과 장기가 금지되자, 약 700m 떨어진 종묘광장공원이 사실상 ‘대체 놀이터’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탑골공원의 바둑장기 금지 조치가 질서 회복도 좋지만 고령화 사회 속 노인 여가 공간 문제를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한 사회학자는 “탑골공원은 노인들에게는 단순한 오락의 공간 너머 사회적 교류이자 일상의 중심이었다”라며 “새로운 형태의 여가 공간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바둑·장기 금지 논란

탑골공원은 3·1운동 발상지이자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된 국가유산으로,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공간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 어르신들의 모임터이자 여가 공간으로 쓰이는 과정에서 음주, 고성방가, 쓰레기 투기, 폭력 사건 등이 빈번히 발생했고, 결국 관리가 어려워졌다. 이에 종로구는 공원 내 장기·바둑을 비롯한 오락행위와 음주, 흡연, 상거래를 전면 금지하고 상시 단속에 나섰다.
‘달라진 공원 풍경과 시민 반응’
장기판 철거 이후 탑골공원은 한결 조용해졌다. 예전에는 바둑돌 소리와 어르신들의 고성이 섞여 활기가 넘쳤다면, 이제는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산책하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곳곳에 설치된 안내문은 오락행위와 음주, 흡연 금지를 알리고 있으며, 그 결과 소음 민원과 안전사고 가능성이 줄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종로구는 지난 7월 31일부터는 경찰과 합동 단속을 실시하며 장기판과 의자를 자진 철거하도록 유도했다. 이 조치 이후 탑골공원 내 질서가 눈에 띄게 개선됐고 환경도 한결 깨끗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노숙자와 어르신들의 무질서한 행동으로 발생하던 안전 문제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오랜 여가 공간을 잃은 어르신들의 아쉬움은 커졌다.

매일 탑골공원을 찾아 일과를 보내던 한 노인은 “매일 장기·바둑도 두고 무료 급식도 받는 게 생활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일상이 바뀌어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생활 방식이 급격히 바뀌자 일부는 종묘광장공원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곳마저 규제가 시작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시선도 있다.
탑골공원이 정비되고 안정화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람이 늘고 있다.

종로구는 대체 공간 마련을 위해 복지 대책을 내놨다. 탑골공원 북문 앞 복지정보센터에서는 무료 급식과 각종 복지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있으며, 서울노인복지센터 분관에는 장기·바둑실과 휴게 공간을 마련했다. 행정 차원에서 어르신들의 생활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병행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도심 공원에서 술판 벌어지는 건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 많았지만 노년층 가족을 둔 사람들은 “노인들에게 갑작스런 변화를 강요하기보다 대안부터 마련했어야 했다”고 비판한다.
곽경근 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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