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가게들이 텅텅 비었어요. 임대료가 비싸고 건물주들은 내릴 생각이 없으니 어쩔 수 없죠.”
최근 방문한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은 한산했다.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수많은 가게가 텅텅 비어 있었다. ‘이곳이 강남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거리는 적막했다. 텅 빈 가게 안은 먼지가 쌓였고 그나마 눈에 띄는 사람들은 도로를 정비하는 작업자들이 전부였다. 문을 연 몇몇 가게도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게 출입문에 덕지덕지 붙은 ‘임대’, ‘깔세(선 월세)’, ‘통임대’ 같은 전단은 거리의 침체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가로수길의 공실 문제는 관련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가 발표한 2분기 리테일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공실률이 43.9%로 1분기 대비 2.3%p(포인트) 상승했다. 작년 대비 4.5%p 올라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공실률을 기록했다. 강남의 공실률은 18.9%였으며 청담의 공실률은 13.4%였다.
가로수길의 공실률이 높은 주요 원인으론 과도한 임대료 수준이 지목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사역(가로수길)의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당 9만3620원이다. 서울시 전체가 5만5090원인 것에 비하면 약 2배 높은 수준이다. 가로수길의 임대료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중대형 상가의 1㎡당 평균 임대료는 2023년 3분기 9만1880원에서 4분기 9만3310원, 2025년 1분기 9만3620원으로 꾸준히 올랐다. 임대료는 오르고 있지만, 수요는 따라가지 못해 공실만 남게 됐다.

가로수길에 애플스토어가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며 입점한 이후 주변 건물들의 임대료도 줄줄이 인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애플스토어가 20년 장기 임대 계약으로 임대료 600억을 내면서 가로수길 임대료 수준이 크게 올라갔다”며 “애플스토어로 인해 주변 건물도 임대료가 오르면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가게들이 문을 닫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낮추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번 내려간 임대료는 다시 올리기 쉽지 않아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대료 인상률이 연 5% 이내로 제한되기 때문에 한 번 임대료를 낮추면 다시 올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건물주는 차라리 공실로 남겨둔다.
가로수길을 대표하는 콘텐츠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성수하면 팝업, 홍대하면 젊음이 떠오르는데 가로수길은 떠오르는 것이 없다”며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는 가로수길을 굳이 갈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 소장도 “가로수길에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 브랜드 매장만 남게 됐는데 이런 매장을 이용하러 굳이 가로수길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당분간 가로수길이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가로수길을 대표할 만한 콘텐츠가 없다”며 “비싼 임대료 때문에 들어올 만한 사람도 없다. 국내 내수 경기가 활발해지지 않는 이상 가로수길 상권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