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이 하는 말이니까, 맞는 말인 줄 알았어요.”
지난 5월, A군(18)은 서울 한 식당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했다. 사장이 ‘교육 날’이라는 이유로 급여를 주지 않은 것이다. 계약서를 쓰고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윗사람의 당당한 말 앞에 의심하지 못했다.
청소년 임금체불 피해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관련 예산은 동결되거나 삭감돼, 대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0대 임금체불 피해자는 △2021년 2975명 △2022년 3054명 △2023년 3381명 △2024년 3696명으로 4년 연속 증가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6월 기준)만 1857명이 집계돼 연말에는 역대 최다 기록이 예상된다.
청소년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관행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법적으로는 명백한 위법이지만, 계약서 미작성으로 인해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워 대응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근로감독관 수가 한정돼 있어 현장 단속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청소년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며 “성인 근로자보다 사회적 약자이며, 간접고용 증가 등 구조적 문제 속에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려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부 예산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내년도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사업 예산은 9억3300만원으로 지난해와 동일하다. 여성가족부 청소년 근로권익 보호사업 예산은 지난해부터 2년 연속 전액 삭감됐다. 여가부 관계자는 “정부·국회에서 노동부와 관련 사업이 중복된다는 지적이 있어 (노동부로) 일원화된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노동인권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게 청소년 임금체불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며 “청소년기본법에 근로 청소년 보호가 명시돼 있는 만큼 정부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예산 확보는 부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정부 차원의 법적 기반도 미비하다. 지난달 청소년 법률 지원 확대 개정안을 발의한 김인제 서울시의회 부의장은 “피해 청소년은 (임금체불 피해를) 증명하려기보다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서울시의 경우, 조례 근거가 없어 현황 파악조차 쉽지 않다. 특히 가정 밖 청소년은 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현 의원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사업주가 청소년 노동권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침해 행위는 엄격히 처벌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며 “예산이 삭감되거나 동결된 것은 매우 아쉽다. 최소한 이전 수준으로 복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