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 빠진 약사·한약사 ‘일반약 판매권 전쟁’ [취재진담]

‘국민 건강’ 빠진 약사·한약사 ‘일반약 판매권 전쟁’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5-10-21 10:46:10 업데이트 2025-10-21 14:43:55


“정상적인 나라를 갈망하는 9만 약사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와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을 피 토하는 심정으로 간곡히 부탁드린다.”


지난 15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가 불법이라며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울먹이며 호소했지만,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약사법상 불법이 아니라는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약사단체의 수장이 국회에서 눈물까지 보인 이유는 30년째 이어져 온 약사와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권 분쟁 때문이다. 약사들은 약사법 제2조의 ‘약은 약사가, 한약은 한약사가 담당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가 불법이라고 본다. 반면 한약사들은 같은 법 제50조의 ‘약국 개설자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정당한 권리라고 반박한다. 이 갈등은 지난 1994년부터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대립은 결국 거리로 번졌다. 대한약사회가 지난 9월18일부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를 제한해 달라는 집회를 시작하자, 대한한약사회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달 15일에도 양측 임원이 같은 주제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두 단체가 치열하게 맞붙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약사와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권 분쟁에 개입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정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양측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은 정부가 한 발 물러선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 역시 수차례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매번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된 점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약사와 한약사의 대립이 이른바 ‘밥그릇 다툼’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약사회와 한약사회 모두 자신들의 권리만을 주장할 뿐, 일반의약품 판매 범위가 확대되거나 축소될 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한약사가 자신의 업무 범위가 아닌 약국을 개설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약국의 정의가 아니다”라는 약사회장의 국정감사 발언에서도 직능 단체의 입장만 보였다.

오랜 기간 지속된 일반의약품 판매권 논란을 끝내려면 약사와 한약사 모두 자신들의 주장이 국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이려면 국민을 먼저 설득해야 한다. 약사회는 왜 한약사가 일반의약품을 판매해선 안 되는지 ‘국민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해야 하고, 한약사회는 왜 자신들이 약을 ‘안전하게 제공할 수 있는지’를 근거로 증명해야 한다. 양 직능의 국민 건강에 대한 숙고가 없다면 국민은 이 논쟁을 ‘관심 밖 이권 다툼’으로 치부할 것이다. 양측 모두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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