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온 악재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한 반도체주 주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에 대한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 소식이, 중국에선 알리바바의 인공지능(AI) 칩 개발 소식이 전해졌다. 다만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2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거래일 대비 3.1% 하락한 6만7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SK하이닉스도 4.83% 떨어진 25만6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밖에 한미반도체(-6.32%) 넥스트칩(-13.74%) 에이디테크놀로지(-8.63%) 코세스(-8.19%) 네패스(-7.47%) 케이씨텍(-6.88%) 동진세미켐(-6.51%)도 줄줄이 급락했다.
삼전·하이닉스, 나란히 외국인 순매도 1·2위
전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일 외국인 순매도 1위와 2위에 각각 올랐다. 외국인은 하루만에 삼성전자를 1835억원, SK하이닉스를 1021억원 순매도했다. 기관 역시 삼성전자에 735억원, SK하이닉스에 161억원 매도우위를 보였다. 개인만이 삼성전자(1943억원)와 SK하이닉스(1173억원)를 순매수했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이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들여올 때 자동으로 적용하던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Validated-End User) 지위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지난 2022년 10월 중국에 대한 미국산 장비 반입을 제한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에는 VEU 자격을 부여해 사실상 규제를 유예해 왔다. 덕분에 극자외선(EUV) 장비를 제외한 일반 반도체 장비는 별도 허가 없이 중국 반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이들 업체들은 앞으로 모든 장비 반입 시마다 건별 승인을 받아야 한다. BIS는 매년 약 1000건의 수출 허가 신청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美 중국 내 관련 기술 개선 견제…“영향 제한적”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제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도는 중국 내에서 반도체 관련 기술이 향상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국내 반도체 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규라인과 공정들은 국내에서 생산투자가 계획돼 있고 중국 지역은 현상 유지에 초점을 두고 있어 단기적인 VEU 폐지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이번 조치의 핵심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 접근에 대한 주도권을 갖으려는 것”이라면서 “글로벌 메모리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메모리는 이미 수십년 간 공급망이 전세계로 분산돼 미국 주도로 이를 재편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생산 관점에서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며 중기 관점에서는 선단화 탄력 저하로 선단 공정에 대한 평균판매가격(ASP) 방어에 우호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선단공정은 반도체 제조에서 주로 5나노미터(nm) 이하와 같은 초미세 회로를 구현하는 첨단 미세화 공정을 말한다. 주로 스마트폰 서버 AI 등 고성능·고효율 반도체에 사용한다.
다만 그는 “이번 정책이 장기화 하면 중국 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공장 라인이 노후화되면서 중국 내 구형공정(레거시 노드)에서의 경쟁 구도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 높다”고 짚었다.
알리바바 자체 AI칩 개발…“엔비디아 독점 구도 지속”
알리바바의 자체 인공지능(AI)칩 개발 소식도 반도체주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독점 구도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 아직 엔비디아 측면에서 큰 위협으로 받아들일 시점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채민숙 연구원은 “알리바바 자체 칩 개발에는 중장기적으로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화웨이 칩에 대한 불만이 칩 개발의 배경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AI 연구는 엔비디아 플랫폼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화웨이 칩은 호환성 측면에서 연구자들에게 매우 불편하다는 것.
차용호 LS증권 연구원은 “중국 AI 칩의 대체 영역은 추론 영역에 한정되며 훈련 영역에서는 여전히 엔비디아의 프로그래밍 모델인 ‘쿠다(CUDA)’를 기반으로 한 엔비디아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채 연구원도 “알리바바의 자체 칩은 미국의 제재로 TSMC 파운드리 이용이 불가능해 중국 내 생태계를 활용해야 할 것”이라면서 “AI 칩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 그 자체만으로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불가능하며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알리바바의 자체 칩은 일부 저 사양 추론 영역에 국한해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반도체주 여전히 긍정적”
따라서 전문가들은 여전히 반도체 관련주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이번 이슈로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지면 오히려 매수에 나서라는 조언도 내놨다.
채민숙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주가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소식이지만 곧 해소될 수 있는 불안감”이라고 판단하며 반도체업종에 대한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했다.
류영호 연구원도 “미국의 정책으로 과도한 주가 하락이 발생하면 이전처럼 되돌림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반도체 업종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차용호 연구원은 “엔비디아 생태계에 포함 되지 않은(Non-Nvidia) 종목과 중국의 반도체 장비 내재화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면서 △코미코 △파크시스템스 △DB하이텍 △에스앤에스텍 △티씨케이 등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