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장 자급 부족’에 혈액제제 생산 발목…“헌혈 규제 완화해야”

‘혈장 자급 부족’에 혈액제제 생산 발목…“헌혈 규제 완화해야”

혈장 가격 상승에 공급 안정성 악화
혈장 자급률 2015년 95.3%→2024년 42.9%
“약가 현실화 뒷받침돼야”

기사승인 2025-09-05 12:53:16 업데이트 2025-09-05 12:54:51
이재우 GC녹십자 개발본부 전무가 5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GBC 2025’ 바이오의약품 공급망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GC녹십자가 미국 내 6개 혈장센터와 오창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글로벌 혈장분획제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지만, 낮은 채산성과 까다로운 헌혈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혈장 자급률을 높일 수 있도록 국내 헌혈 조건을 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완화하고, 기업이 생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약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이재우 GC녹십자 개발본부 전무는 5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GBC 2025’ 바이오의약품 공급망 포럼 연사로 나서 “혈장을 연료로 사용하는 혈장분획제제는 대체제가 없어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수적이지만, 낮은 혈장 자급률이 공급 안정성 악화와 제조사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GC녹십자는 혈장분획제제 ‘알리글로’를 생산 중이다. 알리글로는 선천성 면역결핍증, 면역성 혈소판감소증 등 1차성 면역결핍 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면역글로불린 제제다. 국내에선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아이’라는 제품명으로 판매 중이다.

혈장 유래 의약품(PMDP)은 사람의 혈장(혈액에서 혈구를 제외한 액체 성분)을 정제·분리해서 만든 의약품이다. 혈장분획제제 중에서도 면역글로불린(IVIG), 알부민, 혈액 응고인자 제제 등은 혈우병, 면역결핍증, 저알부민혈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의 유일한 치료 수단으로 꼽힌다.

혈장분획제제는 국가필수의약품에 해당돼 감염병이나 전쟁, 재난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공급이 요구되지만, 혈장 자급률이 낮아지며 수입 혈장에 의존하는 현실이다. 혈장분획제제의 원료는 헌혈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감염병 우려로 헌혈이 줄어들며 혈장 수급이 어렵게 되고 가격이 급등하게 됐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국내 원료혈장 사용량은 2016년 69만7793L에서 2022년 103만8925L로 늘었지만, 자급률은 2015년 95.3%에서 2024년 42.9%로 줄었다. 급기야 저출산·고령화 영향으로 헌혈 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헌혈이 가능한 국내 인구는 2023년 3916만 명에서 2043년 3066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족한 수급은 수입에 의존했다. 2015년 4.6% 불과했던 수입 혈장 의존율은 현재 17%에 달한다. 그러나 글로벌 혈장 수급 전망도 밝진 않다. 수입산 혈장에 대한 의존도는 제조업체의 급격한 비용 상승과 외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높아지는 원자재 비용 역시 생산 확대를 제약하고 있다.

이 전무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혈장 공급량 자체가 줄어들고, 수입 단가는 2017년에 비해 지난해 147% 이상 증가했다”며 “미국 시장과 비교하면 국내 면역글로불린 가격은 미국의 4분의 1 수준으로, 정부는 일부 품목의 약가를 인상했지만 업체 입장에선 채산성이 점점 떨어지며 공급 상황은 여전히 좋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알부민의 원가율은 66%, 면역글로불린은 89%에 달하며, 수입 혈장을 사용할 경우 원료 단가만으로 판매 단가를 초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까다로운 국내 헌혈 규제도 혈장분획제제 생산에 걸림돌이다. 예컨대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CJD)이 유행한 1980~1996년 기간 동안 영국에서 1개월 이상 체류하거나 1997년 이후 3개월 이상 영국 체류 이력이 있으면 헌혈이 평생 제한됐다. 최근 이 조치가 완화되면서 ‘1980~1996년 사이 3개월 이상 영국 거주’ 또는 ‘1980년 이후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에서 수혈 경험’이 있는 경우로 변경됐지만, 여전히 제약이 따른다. 반면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등은 이러한 헌혈 제한을 완화 또는 삭제했다. 이로 인해 호주는 헌혈률이 96%로 급등하고, 캐나다는 헌혈자 수가 1만3000명 이상 증가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이 전무는 “혈장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헌혈이 활발히 이뤄져야 하며, 정부의 약가 현실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정부의 지원 이외에도 회사 차원의 혈장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GC녹십자는 미국 자회사 ABO홀딩스를 둬 현지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6개 혈장센터를 운영 중이다. 회사는 ABO홀딩스로부터 공급받은 혈액으로 국내 오창 공장에서 알리글로를 생산해 미국에 판매하고 있다. ABO홀딩스는 2027년까지 텍사스주에 추가로 2개의 혈장센터를 증설해 총 8개의 혈장 센터를 운영할 예정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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