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요원들이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을 전쟁터에서 작전하듯 급습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갑작스러운 불법이민 단속에 일부 근로자들은 환기구 등에 은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홈페이지에는 ‘ICE가 조지아주에서 불법 고용 및 연방 범죄를 대상으로 여러 기관과 합동 작전을 주도했다’는 제목의 언론 발표 자료와 함께 단속 현장 사진 4장과 2분34초 분량의 영상이 함께 실렸다. 이번 작전은 이민세관단속국뿐 아니라 국토안보수사국(HSI), 마약단속국(DEA), 조지아주 순찰대 등 다양한 기관이 합동으로 진행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영상은 군용 차량과 다수의 차량, 헬리콥터가 현장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이어 유니폼을 입은 마약단속국 요원 10여 명이 양손 결박용으로 추정되는 끈 뭉치를 지닌 채로 건물 밖에서 대기하는 모습이 나왔다. 요원들은 공사 현장으로 들이닥쳐 작업자들을 벽에 줄 세운 뒤 사회보장번호와 생년월일 등 신원을 확인했다.
이후 단속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는 현장 직원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지만, 영상에 나온 일부 직원들의 근무복 조끼에는 DSK 메카닉, HL-GA 배터리회사, LG CNS 등 소속 회사명으로 추정되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영상은 버스에 양손을 짚고 일렬로 늘어선 현장 직원들을 단속 요원들이 차례로 다리와 양손에 체인을 묶어 버스에 태우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중남미 등 제3국 국적으로 추정되는 직원 2명이 부지 내 연못에 들어가 있다가 단속 요원들이 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장면도 담겼다.
현장에 있던 한 건설 노동자는 CNN에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 증언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하수 웅덩이로 도망치거나 환풍구와 연결된 천장 내부 통로에 몸을 숨겼고, 요원들은 보트를 이용해 수색을 벌였다. 이번 단속으로 합법 체류자는 석방됐고, 나머지는 ICE 구금 시설로 이송됐다.
ICE는 “이번 단속 작전으로 475명이 구금됐으며, 이 중 많은 수는 방문 비자를 부정하게 사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체포된 이들은 비자 조건을 어겨 불법으로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기 체류 비자나 관광 비자 소지자는 미국에서 일할 수 없다”면서 “멕시코 출신의 한 영주권자는 여러 건의 범죄 유죄 판결을 근거로 추방 대상자로 판단돼 체포됐다”고 설명했다.
미 당국은 이번 단속에서 체포된 사람의 대다수는 한국 국적이라고 밝혔다. 이 중 한국인은 약 30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구금 인원 가운데 회사 소속 인원은 총 47명(한국 46명·인도네시아 1명)이며, HL-GA 배터리회사 관련 설비 협력사 소속 인원은 총 250명이라고 전했다.
체포된 한국인 대부분은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 비자(B-1)를 받고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B-1 비자는 최대 6개월간 비즈니스 회의나 계약, 시장 조사 등의 활동은 가능하지만, 급여를 받는 현장 노동이나 시공은 엄격히 금지된다. ESTA 역시 마찬가지로 취업 활동은 불허된다.
단속 대상이 된 현대차 공장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장소였다는 점에서 표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의 치적에 흠집을 내고,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매우 우려가 크고 국민들이 체포된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즉각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를 설치해 대응에 나섰다. 이날 조현 외교부 장관은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 합동 대책회의에서 “외교부는 산업부, 경제단체 등 기업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총체적으로 대응해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의 법 집행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권익과 대미 투자 기업의 경제활동이 부당하게 침해돼선 안 된다”며 주미대사관과 주애틀랜타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사안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총력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