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동구 서울숲동진 IT타워 11층, 하이테커 본사. 여느 스타트업과 다르지 않은 사무실이지만, 벽면을 채운 인증패와 표창장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상 수상’ 현판이 유난히 눈에 띈다.
“기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에게 필요한 도구여야 합니다.”
16년간 지켜온 철학이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지난 9월5일, 백성욱 하이테커 대표(44)가 인공지능(AI) 기술혁신을 통한 국가 산업 발전과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유공 포상을 받았다.
백 대표에게 이 상은 단순한 기술력의 증명이 아니었다. ‘사람 중심 AI’라는 신념이 사회적으로 검증받은 순간이었다.
교육 기업에서 사람 중심 ‘AI’로...16년의 여정
하이테커의 출발은 교육이었다. 2009년 ‘한국금융개발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자격증 교육을 중심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사회적 약자들이 양질의 일자리에 접근하지 못하고 반복된 실패로 너무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단순한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이 문제의식은 기업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2024년 ‘하이테커’로 사명을 변경하며 ‘첨단기술(High-Tech)’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을 결합해 ‘사람을 위한 첨단 기술 기업’임을 선언했다. 기술의 중심에 언제나 사람을 두겠다는 의미였다.
백 대표는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약자도 이를 활용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단순 교육을 넘어 첨단 기술을 삶에 적용하는 기업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사람을 살리는 AI ‘하이디’와 ‘케루’
하이테커의 대표작은 AI 휴먼 ‘하이디’다. 110개국 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글로벌 마케터 역할을 한다. 백 대표는 “중소기업은 기술은 뛰어나지만 해외 시장 개척이나 홍보 인력이 부족하다”며 “하이디는 이들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 AI가 사람의 역량을 보완하고 기회를 넓히는 도구라는 철학을 담았다”고 말했다.
하이디는 다국어 커뮤니케이션부터 콘텐츠 제작, 유튜브 숏폼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백 대표가 더 자랑스러워하는 건 사회적 약자를 위한 AI 기술들이다. ‘베리어프리 일자리 플랫폼’은 장애인과 고령자가 불편 없이 구직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비 색상 등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반영됐다.
“미스매칭제로 플랫폼(MZP)을 통해 장애인 74명의 취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이것이 진짜 AI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더 인상적인 건 AI 반려식물 ‘케루’다. 2024년 서울시 '약자를 위한 기술 개발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 프로젝트는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특별한 존재다. 은둔청년에게 맞춤 대화를 제공하고, 위험 단어를 감지해 위기를 예방한다.
백 대표는 “케루는 단순한 반려식물이 아니라, 정서를 지지하고 타인과의 관계 회복을 돕는 안전망”이라며 “무해한 존재와의 감정 교류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힘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AX로 세계로 확장
하이테커의 혁신은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등 글로벌 ICT 기업과 협력해 ‘한국형 인공지능 전환(AX)’ 모델을 구축했다.
백 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는 코파일럿(Copilot) 기반 교육·실증 과정을 운영해 실제 업무 생산성을 높였고, 오라클과는 바이오·AI 융합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의료·생명과학 분야 적용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자신했다.
특히 영미권 데이터에 치중된 글로벌 AI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고, 한국 기업 문화와 환경에 맞춘 현지화 방법론을 축적한 점이 차별화 요소다. 그는 “AI 강사 기술을 통해 98개국 언어로 자동 송출이 가능하다”며 “미국 플러턴시를 시작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 시장에 교육 콘텐츠 수출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AI 약동기업’의 꿈
하이테커는 2027년 매출 300억원 달성 후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백 대표가 내세운 슬로건은 ‘AI 약동기업’. ‘약동(弱同)’은 도약이 아니라 ‘약자와 동행한다’는 뜻이다.
“이미 글로벌 대기업들이 선점한 AI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차별화할 길은 위로 치솟는 기술 경쟁이 아니라, 아래를 품는 따뜻한 기술이라고 믿습니다.”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3년간 매출 96.9% 성장, 지난해 매출 100억원 돌파, 고용노동부 ‘K-디지털 기초역량훈련’ 사업 5개 과정 선정 등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백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건 숫자가 아니다. 그는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 정부 부처와 대기업 CSR 부문에서도 협력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하지만 가장 보람찬 순간은 우리가 도운 사람들이 실제로 새로운 기회를 잡을 때”라고 강조했다.
사무실 복도에도 ‘기술은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문구가 걸려 있다. 거대한 혁신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사람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는 믿음, 그것이 하이테커가 추구하는 ‘따뜻한 기술’의 본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