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변사자의 DNA 정보가 1만2000여 건 쌓여 있다. 그러나 성인 실종에는 법적 근거가 없어, 가족이 직접 요청하지 않으면 불상변사자와의 대조조차 진행되지 않는다. 이렇게 수많은 연결 가능성이 서랍 속에서 잠든 채, 가족들은 수년째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간다.
현장에서 확인되는 제도 공백은 분명하다. 성인 실종자 가족이 DNA를 제출하더라도, 부모가 이미 사망하고 형제·자매가 대신 DNA를 의뢰하는 경우 현 체계로는 대조가 불가능하다. ‘찾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검색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19대부터 입법 발의 ‘성인실종법’…왜 필요한가
끊어진 고리를 잇기 위한 해법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말 발의한 ‘성인실종법(실종자보호법)’ 제정안과 ‘실종아동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현행 실종아동법은 아동과 치매노인에 한정해 DNA 대조와 정보 제공을 규정한다. 성인은 ‘가출인’으로 분류돼 경찰과 국과수가 적극 개입하지 못한다. 실종 성인의 사망자 발견 비율은 아동보다 4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허 의원은 “대부분의 국민은 명절에 고향을 찾아 가족을 만나는 설레는 시간을 갖지만, 누군가에게 명절은 가족의 생사조차 몰라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 있다”며 “국회가 성인실종법과 불상변사자 법제화를 조속히 통과시켜 이들의 고통을 하루라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시근 성균관대 교수도 “성인실종법은 단순히 절차를 마련하는 차원을 넘어, 실종자를 찾는 것은 가족의 몫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라며 “제도 밖에 있던 수많은 장기 실종자 가족들이 국가 안전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법은 이미 19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10년 넘게 좌절됐다. 이번 정부에서도 무산된다면 더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선진국 중 이런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관련 법안이 통과되길 바란다”고 짚었다.

DNA 데이터베이스로 실종자 찾는 미국·일본
해외에서는 이미 국가 차원의 시스템이 작동 중이다. 미국은 ‘내셔널 실종 및 미확인자 시스템(NamUs)’이라는 전국 단위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한다. 법무부 지원을 받는 NamUs는 실종자·미확인 사망자·무연고자 정보를 통합 관리하며, DNA·지문·치과 기록 등 무료 법의학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사기관뿐 아니라 가족과 일반 국민도 DB를 열람하거나 정보를 제출할 수 있다. 이는 매년 수십 년 된 장기 실종 사건이 해결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민간 차원에서도 ‘Doe Network’와 같은 비영리단체가 활동한다. 시민 자원봉사자와 법의학 전문가, 수사기관 관계자가 협력해 미확인 사망자 정보를 공유·제보받으며 신원 확인을 돕는다.
일본은 해상에서 발견된 변사자의 DNA를 인터폴을 통해 한국에 제공하고 있다. 바다에서 수습된 변사자의 상당수는 국적이나 신원을 특정하기 어렵지만, 국과수와의 대조를 통해 지금까지 11건이 한국 실종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내 DNA를 국가가?”…이원화 관리로 우려 최소화
일부에서는 개인정보 침해를 우려한다. 하지만 이번 법안은 모든 성인의 DNA를 강제로 등록하는 제도가 아니다. 가족이 원할 경우에만 자발적으로 제출하고, 활용 목적은 신원 확인으로 한정한다. 관리 주체는 국과수 등 국가 전문기관이다.
국과수 역시 현행 아동·치매노인 DNA DB 운영에서 인적 정보와 유전 정보를 분리해 관리하고 있다. 박현철 국과수 변사자신원확인실장은 “실종자 DNA 데이터베이스도 아동 DB와 마찬가지로 인적 정보와 DNA 정보를 분리해 이원화해 관리하고 있다”며 “막연한 개인정보 우려는 제도가 마련되면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을 기다리는 동안, 실종 가족이 할 수 있는 일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가까운 경찰서 실종 담당 부서를 찾아 신분증과 가족관계 증명서를 제시하면 DNA 채취·등록을 요청할 수 있다. 구강상피세포로 채취한 시료는 인적 정보와 분리 보관돼 국과수에서 분석·DB화되며, 미확인 변사자와 대조된다. 일치 가능성이 확인되면 가족에게 통보되고, 원하면 언제든 시료 폐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성인 실종자 가족에게는 이 절차가 충분히 안내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아동·치매노인의 경우 법적 근거가 있어 비교적 원활히 진행되지만, 성인 실종은 제도적 공백으로 경찰의 응대가 일관되지 않다. 결국 가족이 먼저 절차를 알고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으면, 확인 기회조차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만다.
[실종자 가족이 해야 할 일] 1. 경찰에 DNA 검체 채취 요청하기 가까운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실종팀) 또는 민원실을 방문하여, 실종자 가족의 DNA 검체 채취를 요청할 수 있다. 현행법상 성인 실종자의 검체 채취는 의무 대상이 아니므로, 일부 경찰서에서는 절차 안내에 소극적일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가족의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여 적극적으로 채취를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용은 무료이며, 직계가족 구강세포(면봉)를 간단히 채취한다. 이렇게 채취된 DNA 검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전달돼 신원미상 변사자의 DNA와 대조된다. 현재는 성인 실종자 가족의 DNA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는 데 필요한 법적 근거가 없어 상시 검색이 불가할 수 있으나, 신원 확인을 위해 대조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향후 법 제정으로 등록 및 상시 검색이 가능해질 수 있음) 2. 실종자 사용 물품 따로 확보하기 경찰서 방문과 별개로 실종자가 사용했던 칫솔, 빗, 면도기 등 개인 물품을 훼손되지 않게 잘 보관해야 한다. 이는 추후 신원 확인 과정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