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급증에 치료제 공급 늘렸더니 ‘약가 인하’…역행하는 난임 정책

수요 급증에 치료제 공급 늘렸더니 ‘약가 인하’…역행하는 난임 정책

난임 치료제 공급 중단·부족 9차례 보고
난임 부부 지원사업 3차례 확대
“다양한 약 확보, 환자 치료에 유리”
“공급 우려 치료제, 국가필수의약품 지정해야”

기사승인 2025-10-17 09:18:52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난임 환자 급증에 따라 치료제 공급량을 확대했을 뿐인데 약이 많이 팔렸다는 이유로 제약사에게 돌아갈 약가가 깎인 것으로 확인됐다. 약가 정책이 난임 정책과 역행한다는 지적과 함께 제약사의 치료제 공급 유인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임신유지호르몬(프로게스테론)과 더불어 난임 치료제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난포자극호르몬 제품 가운데 일부가 반복적으로 품절 문제를 겪고 있다. 난임 치료제 대부분이 수입제품인데, 수요가 늘며 지난 2023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9차례 공급 중단 또는 부족이 보고됐다. 그중 7건이 정부 난임 지원사업이 확대된 지난해 이뤄졌다.

보건복지부는 초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난임 부부 지원사업을 3차례에 걸쳐 확대했다. 소득기준(기준중위소득 180% 이하)을 폐지해 모든 난임 부부에 시술비를 지원하고, 건강보험 급여 지원 횟수를 최대 20회로 확대했다. 또 시술비 본인부담률을 연령과 관계없이 30%로 통일하고, 지원 기준을 ‘1인당’에서 ‘출산당’으로 바꿨다. 이로 인해 지난해 난임 시술 진료건수와 진료실 인원은 전년(2023년)과 비교해 각각 28만9000건, 2만6000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지사를 둔 일부 글로벌 제약사는 정부 정책에 따라 급증하는 난임 치료 수요를 맞추기 위해 본사를 설득해 난임 치료제를 최대로 공급받았지만, 돌아온 것은 치료제 약가 인하였다. 의약품이 전년 대비 많이 처방되면 정부가 제약사와의 협상을 통해 의약품 가격을 낮추는 ‘사용량-약가 연동제’ 때문이다.

실제 난임 지원 정책 확대에 따라 작년에 공급 부족으로 식약처에 보고된 한국머크의 난임 치료제 ‘퍼고베리스 주사제’(성분명 폴리트로핀알파)는 부족한 공급량을 최대한 조달했지만, 건강보험 청구금액이 전년에 비해 증가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건강보험 상한약가가 8만6000원에서 8만1000원으로 삭감됐다.

난임 치료제 품절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 대학병원 산부인과 A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배란유도제인 ‘클로미펜’이 우리 병원뿐 아니라 아무 데도 공급이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고날에프펜(폴리트로핀알파, 유전자 재조합)의 경우엔 원래 다양한 용량의 제품이 병원에 들어왔었는데, 지금은 300IU 용량 하나만 있다”고 말했다. 고날에프는 클로미펜으로 치료되지 않은 여성의 무배란증과 보조생식 실시 중 다수의 난포를 성숙시키기 위한 난소과자극 요법 치료제로 사용된다.

이어 “난임 치료제는 다른 약들과 기전이 달라 어떤 특정 약에만 반응하는 환자가 있어 성분은 비슷하지만 다른 여러 옵션의 치료제를 두고 쓰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다양한 약을 확보하는 게 환자 치료에서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난임 치료는 치료 흐름이 끊겨선 안 된다. 배란 유도를 위해 생리 2~3일째부터 배란 유도제를 1~2주간 꾸준히 투여해야 한다. 약품 공급이 중단되면 해당 회차의 시술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A교수는 “난임은 하루 이틀 차이라도 치료시기를 놓치면 주기가 완전히 날아가기 때문에 적정하게 치료제를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약품 공급 중단은 난임 치료 현장과 환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난임 치료제를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김선민 의원은 “난임 지원 정책을 확대하며 난임 치료제가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데, 한쪽에선 많이 팔렸다고 약가를 깎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물량 확보를 못하면 누가 책임지나. 저출생 해결 정책을 너무 근시안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난임 치료제를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 약가가 깎여 공급을 더욱 부족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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