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증원을 핵심으로 한 ‘사법개혁안’을 발표하며, 연내 입법 추진 방침을 공식화했다. 민주당은 국정감사 이후인 다음 달부터 법원조직법·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을 포함한 본격적인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사법 체계 전반의 변화로 인한 혼선과 대법원 기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법조계·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발표한 사법개혁안에는 △대법관 수 증원 △추천위원회 구성의 다양화 △법관 평가 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이 포함됐다.
민주당은 상고심 적체 해소와 국민의 재판 접근성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고, 3년에 걸쳐 매년 4명씩 증원해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26명 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이후 대법원은 6개의 소부와 2개의 연합부로 재편된다. 연합부는 현재 13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의 역할을 맡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전체 대법관의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는 합의체를 구성해 판결하도록 했다.
추천위원회 정원도 확대되고 구성이 다양화된다. 당연직 위원이었던 법원행정처장이 빠지고,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새로 포함된다. 법관 대표회의가 추천하는 비(非)대법관 법관은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난다. 위원 중 한 명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하며, 지방변호사회 추천 변호사 1명도 위원으로 참여한다. 위원장은 기존처럼 대법원장이 지정하지 않고, 위원 간 호선으로 결정한다.
또한 법관 평가에는 대한변호사협회의 평가가 반영되고, 법관 인사위원회는 대법원장·전국법원장회의·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각 1명씩 추천해 구성하도록 했다. 현재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건의 판결문만 복사할 수 있었으나, 형사사건의 경우 1심과 2심 판결문까지 열람·복사를 전면 허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압수수색영장 발부 과정에서는 ‘사전심문제’가 도입된다.
민주당은 이번 개혁안에 포함되지 않은 ‘재판소원 제도’도 별도 당론 법안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법원의 확정판결이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헌법재판소가 인용 결정을 내리면 해당 판결이 취소되고 원심 법원이 다시 재판을 진행한다. 사실상 4심제 도입과 유사해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재판소원 제도를 상임위 차원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번 개혁안이 대법원의 구조와 기능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현재 14명인 대법관 중 10명이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교체될 예정인 가운데, 증원안이 통과될 경우 대통령은 임기 중 최대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사법부 독립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낸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의 헌법적 성격을 바꾸는 중대한 결정을 하면서 국민적 합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것은 책임 있는 입법 태도가 아니다”라며 “이처럼 중요한 사안이라면 입법예고와 공청회 등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하고, 필요하다면 국민투표까지 부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또 “당초 조희대 대법원장 교체를 통한 사법부 장악이 여의치 않자 대법관 증원이라는 방식으로 우회한 것처럼 보인다”며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사법개혁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헌정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이번 개혁안을 두고 제도 개선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짙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 전문가는 “개혁안이 제도 효율화보다 결국 정부나 여당의 정책 기조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사법 구조를 끌고 가려는 목적”이라며 “이 같은 접근은 사법개혁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있고, 사법 신뢰를 오히려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 아래에서 장기적 제도 개혁보다 단기적 정치 효과에 초점을 맞춘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편 지난 2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각급 법원장들은 대법관 증원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증원 규모나 시기 등은 신중히 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은 “대법관 증원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수와 시기를 두고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고, 오민석 서울중앙지법원장 역시 “대법관 증원 문제는 대법원의 공식 입장을 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