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픽? 젠지만의 이유 있을 것”…현실 된 ‘헬퍼’의 자신감 [롤드컵]

“밴픽? 젠지만의 이유 있을 것”…현실 된 ‘헬퍼’의 자신감 [롤드컵]

기사승인 2025-10-24 06:00:12
‘헬퍼’ 권영재 코치가 13일 중국 베이징 스마트 e스포츠센터에서 쿠키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건 기자

‘헬퍼’ 권영재 젠지 코치의 말이 현실이 됐다. 젠지가 그들만의 밴픽으로 녹아웃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젠지는 23일 오후 8시(한국시간) 중국 베이징 스마트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2025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스위스 스테이지 4라운드 2승1패조 TES와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2-0 완승을 거뒀다. 3승을 거둔 젠지는 예상대로 8강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날 젠지는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했다. 1~2세트 합계 54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체로 좋지 않다고 평가받던 밴픽을 선보였음에도 구도를 비틀면서 TES를 제압했다.

1세트 블루 진영에서 시작한 젠지는 트런들과 신짜오 등 좋은 정글 챔피언이 살아있음에도 1픽으로 바이를 가져왔다. 반대 급부로 9연승을 달리던 탑 사이온과 미드 1티어인 오로라를 내줬다. 4~5픽으로 내려가서는 좋은 바텀 듀오인 코르키와 니코마저 헌납했다. 렉사이와 탈리야, 루시안, 브라움으로 대응했지만, 데이터 기준으로는 TES의 조합에 밀리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젠지의 기량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인’ 김기인은 탱커의 정수를 보여주며 상대의 시선을 끌었고, 그사이에 바이가 파고들어 교전 승리를 챙겼다. ‘쵸비’ 정지훈도 라인전 단계에서 상대를 찍어 눌렀다. 젠지의 체급에 TES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며 21분 ‘에이스(5인 처치)’를 당했다. 1만 골드 차를 벌린 젠지는 24분55초 만에 경기를 손쉽게 마무리했다.

2세트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젠지는 2세트 OP(Over Power)라 평가받는 아지르를 살리고 라이즈를 밴했다. TES는 블루 1픽으로 유나라를 가져오면서 바텀에 힘을 줬다. 미드 아지르를 고르며 안정감을 갖출 수 있던 상황, 젠지는 아지르를 거르고 레드 1~2픽으로 자르반 4세와 카이사를 픽했다. 아지르를 주고 카운터를 치겠다는 의도였고, 결국 안정감이 크게 떨어지는 요네를 골랐다.

정리하면, 1~3픽에서 롤드컵 픽밴율 2·3위인 아지르와 유나라를 내주고 가져온 카드는 자르반 4세, 카이사, 요네였다. 자르반 4세는 한때 9연패에 빠지는 등 다루기 어려운 카드였고 요네는 이번 대회 첫 등장이었다. 카이사만이 주류픽이라 할 수 있었다. 

TES는 럼블-판테온-아지르-유나라-레오나로 조합을 완성했다. 이에 반해 젠지는 라인 주도권이 없는 오른-자르반 4세-요네-카이사-라칸을 뽑았다. 세 라인에서 밀리기 때문에 초반 TES의 공세를 받아내기 어려워 보였다. 

젠지 선수단. 라이엇 게임즈 제공

하지만 젠지는 그들의 체급으로 TES를 눌렀다. 5분 상대 압박에 체력이 다 빠진 정지훈은 물러서지 않고 ‘캐니언’ 김건부와 역습 각을 봤다. ‘크렘’이 쓰러지면서 퍼스트 블러드가 젠지 손에서 완성됐다. 곧바로 합류하지 않은 ‘카나비’ 서진혁의 미스도 있었지만, 젠지의 순간 판단이 빛났던 순간이다.

사이드 운영에서도 한 번만 삐끗하면 구도가 무너지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때 정지훈은 놀라운 외줄타기로 상대 노림수를 매번 흘려냈다. 끝내 바텀 영역 싸움에서 쫓겨난 TES는 15분, 한타 포지션에서 젠지에 밀린 채 럼블·판테온 등 챔피언의 초중반 화력을 믿고 전투에 임했으나 젠지의 세밀한 스킬 연계에 패퇴했다. 젠지 선수들의 피지컬과 교전 설계가 돋보였다. 버티기 어려운 초반 구도를 넘긴 젠지는 이후 조합 밸류를 살려 경기를 승리했다.

권 코치는 지난 13일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스크림 결과에 따른 왜곡된 데이터를 얻는다는 우려에 관해 “밴픽이 안 좋다고 평가받아도 내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선수들이 몇몇 구도를 불편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과하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면 ‘젠지만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며 “젠지도 모든 대회를 참고하고, 상식적인 티어 픽을 당연히 알고 있다. 스크림 때문에 왜곡되는 데이터가 있을 수 있으나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자신했다.

권 코치의 말처럼 이날 젠지가 선보인 밴픽은 젠지만이 할 수 있는 밴픽이었다. 코치진은 승리 플랜이 한정적인 조합이라도 선수단의 기량을 믿었고, 선수들은 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상위 라운드에서 이런 밴픽이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지금 당장 결과를 가져온다면 충분히 성공한 밴픽이다. 어쩌면 이 밴픽이 그들에겐 정답일 수 있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
김영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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