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모주 성패는 상장일에만 결정되지 않는다.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고 증시에 안정적으로 안착했는지 등 상장 이후 흐름을 종합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구조적 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1일까지 유가증권(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31개 종목 중 7개(22.6%) 종목은 상장 첫날부터 현재 내리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7개 종목 모두 올해 1분기(1~3월) 상장한 기업이다. 이들 종목 중 3종목(LG씨엔에스, 심플랫폼, 삼양엔씨켐)은 KB증권이 대표주관사를 맡았다. 한국투자증권(더즌, 아이지넷)과 미래에셋증권(데이원컴퍼니, 미트박스)도 2종목씩 주관에 나섰다.
주가는 흐른다. 상장 후 하락세를 보이는 종목이 있다면, 상장 초반 ‘뻥튀기 공모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후 실적 개선이나 성장 기대를 기반으로 시장에서 재평가받은 종목들도 존재한다. 엔터테크 전문기업 노머스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상장 당시 고평가 논란이 일었던 노머스 주가는 6개월 만에 공모가(3만200원)을 넘어섰다. 21일 마감 기준 종가는 3만1850원이다. 공모가보다 약 35.8% 낮은 1만9400원인 상장 첫날 종가 대비 64.2%나 뛰었다. 설립 이래 최대 실적과 첫 흑자 전환이라는 성과가 주가를 끌어올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설명서에는 리스크가 명시돼 있었다”며 “공모가도 기관투자자의 수요를 반영해 상단으로 확정된 것이다. 상장 이후 주가 흐름만을 근거로 주관사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결과론적 해석에 가깝다”고 말했다.
모든 종목이 이런 회복 시나리오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상장폐지 위기에 처하는 종목도 있다. 일례로 보안업체 시큐레터는 지난해 8월 상장 후 불과 7개월여만에 감사의견 거절을 이유로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시큐레터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했다며 과징금 23억8410만원, 담당 임원 등 2명에 1030만원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다. 다만 올해 1월 시큐레터가 적정 의견을 받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형식성 상장폐지 사유가 해소됐다. 회사는 현재 거래 재개를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관사는 상장으로 역할이 끝나지만, 투자자는 이후 손실을 고스란히 감당하게 된다”며 “상장 전 실적이 좋았더라도 이후 급격히 악화하는 일부 기업을 보면 IPO 시장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거래소의 '2024 사업연도 12월 결산법인 결산 관련 시장 조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코스닥시장 상장사 중 57곳(코스피 14개사·코스닥 43개사)에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은 부실 및 한계기업을 빠르게 퇴출하기 위한 상장폐지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고 저성과 기업의 증시 퇴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상장 이후 기업의 성과와 주가 흐름, 단기 매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장치가 미비한 상황이다. 공모주의 본래 취지와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주관사와 발행사, 투자자에 대한 장기적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은 이보다 앞서 상장 이후 흐름에 대한 감시 체계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켰다. 미국 중앙예탁결제기관은 1997년부터 ‘IPO 트래킹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으며, 공모주 배정 이후 일정 기간 투자자의 매도 행위를 추적해 단기 매도자를 식별하고, 해당 투자자에게 물량을 배정한 주관사에 징벌적 부과금을 부과하는 근거로도 활용해왔다. 이는 단기 차익 실현을 위한 투기적 접근을 억제하고, 상장 이후 안정적 주가 흐름을 유도하는 자율적 감시 장치로 기능해왔다.
국내에서도 금융당국은 2022년 미국과 유사한 ‘IPO 단기차익거래 추적 시스템’의 도입 필요성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한 바 있다. 다만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국내는 미국과 달리 의무보유 확약 제도가 이미 제도적으로 강하게 장려되고 있어, 장기 투자자 선별을 위한 트래킹 시스템의 실효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 연구 결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은 확약 문화가 일반화되지 않아 사후 감시가 필요하지만, 국내는 애초에 확약 여부로 장기 투자 의사를 판단하는 구조라 제도 도입의 현실성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공모주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단기 주가에 휘둘리는 구조를 넘어 상장 이후 일정 기간의 성과에 따라 책임을 묻는 장기적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구조는 시장의 지속가능한 신뢰를 구축하는 핵심 조건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펀드 가입 시 과거 운용 실적이 공시되듯, 주관사 역시 최근 몇 년간 공모한 기업들의 상장 이후 주가 흐름이나 실적 등을 정량적으로 공시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정보가 제도화되면 투자자들은 주관사의 공모 이력을 참고해 선별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주관사 또한 공모 실적에 책임을 지는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