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여전히 어린 상태로 남을 수 있을까”…조승리 첫 연작소설 ‘나의 어린 어둠’ [쿠키 서평]

“어둠은 여전히 어린 상태로 남을 수 있을까”…조승리 첫 연작소설 ‘나의 어린 어둠’ [쿠키 서평]

기사승인 2025-06-11 16:50:51
조승리 작가의 신작 ‘나의 어린 어둠’. 다산책방. 200쪽.

“네가 나만큼 망가지면 당당히 네 옆에 있을 수 있을 텐데.”

실명을 앞둔 한 소녀의 고백에서 시작되는 어둠의 기록이 세상에 나왔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로 2024년 비판과 유쾌함을 오가며 주목받았던 에세이스트 조승리가 이번엔 소설가로 돌아왔다. 첫 연작소설집 ‘나의 어린 어둠’을 통해 그는 다시 한번 불편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나의 어린 어둠’은 실명을 앞둔 청소년기를 통과하는 네 명의 화자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소설과, 그 창작 과정을 담은 에세이 한 편으로 구성됐다. 시각장애라는 경험을 단지 개인의 특수한 고통으로 국한하지 않고, 그것이 가족·사회·자존감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섬세하게 짚는다. 동시에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로, 이 어둠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조승리들’이 살았을 법한 이야기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조승리’와 닮아 있으나 ‘조승리’가 아니다. 누군가는 실명 앞에서 첫사랑을 잃고, 누군가는 가족의 이해 부족 속에 외로움을 겪는다. 또 다른 이는 특수학교라는 또 다른 낯선 공간에서 장애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깨닫는다. 픽션이면서도, 에세이처럼 진솔하고, 때론 르포처럼 생생하다.

작가는 “나는 캄캄한 눈으로 세상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내놓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다짐의 첫 결실이다. 각 편은 상실의 고통보다도, 그럼에도 현재를 살아내려는 감각을 밀도 높게 보여준다. 표제작 ‘나의 어린 어둠’에서는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듯 살아가야 한다”는 문장이 반복되며, 독자의 심장을 두드린다.

‘나의 어린 어둠’이 조명하는 건 단지 시각의 상실이 아니다. 실명을 통해 관계가 무너지고, 계획이 틀어지고, 자존감이 흔들리는 모든 과정을 총체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작중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둠을 통과한다. 어떤 이는 가족과의 갈등을 마주하고, 어떤 이는 폭력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되찾는다.

장애 문제를 사회적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도 돋보인다. 비장애인과의 간극, 장애인들 사이의 불균형, 제도적 부조리 등은 비판의 화살로 정제되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또렷이 각인된다.

픽션과 논픽션, 그 사이의 온도

책의 말미에는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소설가가 되었다’가 실렸다. 장애학교에서 안마사로 일하기까지, 글을 쓰지 못했던 시간부터 다시 이야기로 응답하기까지 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에세이는 앞선 네 편의 소설에서 분화된 자아들을 하나의 목소리로 엮는 역할을 한다.

‘자전소설’이라는 말조차 무력해진다. ‘나의 어린 어둠’은 조승리 한 사람이 아닌, 이 땅의 수많은 ‘조승리들’의 이야기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으려 했던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결국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상실을 견디고 있는가. 그 안에서 어떻게 오늘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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