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산업 ‘이격거리’ 지자체-주민 갈등…“주민 보호”vs“보급 확대” 입장차

풍력산업 ‘이격거리’ 지자체-주민 갈등…“주민 보호”vs“보급 확대” 입장차

- 순천·포항 등서 풍력발전 이격거리 규제 완화·강화 ‘이견’
- 지자체 조례 통한 자율성·예외 고려…중간지점 못 찾아
- 저주파 소음 등 데이터·연구 부족, 합리적 주민 설득 난항

기사승인 2025-06-24 10:00:08
GS 영양풍력발전단지 전경.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GS그룹 제공 

태양광산업에서 지속되고 있는 이격거리(도로·주거지역 등으로부터 최소한의 거리)를 둘러싼 갈등이 육상풍력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인 저주파 소음을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각 지자체에 맡겨진 조례가 이러한 중간지점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풍력업계에 따르면, 전남 순천시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풍력발전 규제 완화를 놓고 지자체와 주민, 주민과 주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찬반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순천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는 지난 16일 축조심사(의안을 조항별로 낭독하는 형태의 심사)를 하고 도시계획 일부개정 조례안 의결을 ‘보류’하기로 했다.

이번 개정안은 풍력발전시설 허가 기준을 완화하는 단서 조항을 신설했다. 순천시 기존 조례에선 도로, 5호 이상 주거밀집지역, 축사로부터 2km 이내 풍력발전시설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나, 주민 참여형 사업으로 범위 내 모든 실거주 세대 동의가 있을 경우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이러한 완화 기조의 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안은 지난해 4월에도 발의됐었지만 주민 의견 청취 부족 및 반대 움직임 등으로 보류돼 왔다.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순천지역 풍력발전단지조성 반대대책위원회’는 저주파 소음 등을 우려하며 “예외 조항은 업자와 결탁한 일부의 선동으로 풍력발전시설을 순천 전역에 확산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순천시 도시건설위원회는 타 지역 상황,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조례 개정을 심사숙고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다는 방침이다.

경북 포항시에서도 이격거리 조례 제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김하영 포항시의원 등 12명 발의로 시의회에 제출된 ‘포항시 풍력발전시설 허가 기준에 관한 조례안’은 지난해 12월 시의회 건설도시위원회에서 유보된 뒤 반 년째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조례안의 핵심은 풍력발전시설이 △도로부터 1000m 이내 △주거밀집지역으로부터 2000m 이내 △정온시설(병원, 교육연구시설 등)로부터 2000m 이내 △관광지, 국가유산, 공공업무시설로부터 2000m 이내 △축사시설로부터 2000m 이내 들어설 수 없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시의회 내부는 물론, 주민 등 외부 의견도 나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주민들이 이격거리에 대해 찬성하는 가운데, 포항 남구 오천읍 주민 50여 명은 포항시청 앞 광장에서 “풍력발전단지 조성으로 마을 발전을 앞당길 수 있도록 시의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며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될 수 없도록 이격거리를 규정한 조례 제정을 반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10일 순천지역풍력발전단지 조성 반대대책위원회가 전남 순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순천시의회의 조례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순천지역풍력발전단지 조성 반대대책위원회 제공 

쟁점은 저주파 소음, 핵심은 납득할 만한 합리적 주민수용 방안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발전설비에 대한 이격거리 규제는 지자체 조례를 통해 적용되고 있다. 대통령령 등 법률을 통해 규격화·법제화하는 것보다 해당 지역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지자체의 자율성에 맡겨 지역별 예외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다만 이 같은 분쟁을 줄이기 위한 연구나 주민수용성 제고 목적의 가이드라인 마련은 부족한 실정이다.

대표적인 풍력발전설비 이격거리 쟁점으로 알려져 있는 저주파 소음이 그 예다. 저주파 소음이란 주파수 100Hz(헤르츠) 이하의 소리로 사람에게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주는 소음을 말한다. 풍력터빈처럼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는 대형 기계장치에서 주로 ‘웅웅’거리며 발생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논문 등에 따르면, 풍력발전 소음에 대해 가축 및 사육시설은 최소 1km, 주택지는 최소 1.5km의 이격거리를 두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한국교통대학교 산학협력단이 환경부의 용역을 받아 조사한 ‘국내 풍력발전단지 소음영향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남과 제주 풍력발전단지 6개소는 이격거리 250m 기준 6곳 중 5곳에서, 1km 기준 4곳 중 2곳에서 주파수별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발전단지 1km 이내 민가 15곳 중 7곳에서도 저주파 소음 영향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단 주민들이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니 권장 사항에 있어서도 입장차가 평행선을 달리는 셈이다.

익명을 요청한 풍력업계 관계자는 “쟁점이 있다면 그 쟁점을 해소할 수 있는 연구·데이터 확보 등 노력이 동반돼야 하는데 여러 지자체에서 이러한 관점의 노력이 부족하다”면서 “만약 이격거리가 필요하다면 저주파 소음, 생태계 영향 등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명확한 자료를 토대로 상호 논의를 해야 하고, 주민 보상 방안은 물론 주민과 함께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민주적인 주민수용성 확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2023년 동명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제주녹색환경지원센터에서 시행한 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제주도 육상·해상풍력발전단지를 대상으로 ‘풍력발전단지 실시간 소음 모니터링 및 GIS(지리정보시스템)-반응형 웹 기반 소음지도 구축’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최근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시도에서 풍력발전단지 인근 주민이 겪는 소음 관련 피해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연구가) 풍력발전단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음을 효과적으로 측정하고, 실시간 모니터링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사용자 친화적인 웹사이트를 개발해 해당 단지와 관련한 분쟁이나 논쟁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는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며, 지역사회와 이해관계자 간의 의사소통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범석 제주대 교수는 “저주파 소음이 발생하면 사업장에 대책을 마련하라는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아직 권고 수준”이라며 “풍력발전 확대를 위해 제도적 뒷받침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도 “앞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고 중앙정부에서 입법 절차를 밟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표준화가 필요함에도 입법을 통해 이를 강제·규제화 하는 것이 항상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면서 “과학적 접근이나 데이터의 영역도 매우 중요하나 결국 이해관계자 간 많은 소통과 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