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에서 한국 산업계를 이끌 새 수장으로 원전 전문가인 김정관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이 지명되면서, 원전은 물론 차세대 원자로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원전해체와 마찬가지로 국내 SMR 역시 R&D(연구개발) 및 실증 단계인 미개척시장이어서 이에 대한 안전성 확보 등 문제가 뒤따르는 데다, 부지 선정 절차를 놓고도 이견이 나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8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신임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정관 사장은 두산에너빌리티 재직 중 뉴스케일, 테라파워 등 글로벌 SMR 기업들과 협력을 이끈 경험이 있는 전문가다.
이 대통령 역시 대선 유세 기간부터 꾸준히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분야를 적절히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를 강조해 온 만큼, 김 후보자가 장관으로 최종 임명될 경우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반을 주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래 에너지 산업의 핵심이자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SMR은 발전용량 300MW(메가와트) 이하 소형 원자로로, 주요 기기를 공장에서 모듈화해 제작한 후 현장에서 조립하는 형태로 건설된다. 1000MW 이상 대형 원전 대비 절반 이하의 부지에 건설하며, 건설 기간과 비용 역시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안정적이고 대규모 전력을 빠르게 조달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도 SMR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는 2035년까지 전 세계 약 650조원 규모의 SMR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2022년 기준 약 80종의 SMR이 개발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 기술표준이 자리 잡지 않은 미개척시장이어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앞서 수립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대형 원전 2기와 더불어 SMR 1기를 2038년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SMR 부지 확보를 위한 지자체 자율유치 공모를 진행 중이며, 이후 부지 평가·선정, 부지 통보, 예정구역 지정 신청 등의 과정을 거쳐 올해 말까지 최종 부지 선정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그간 원전에 다소 비판적이던 여당(더불어민주당)에서도 SMR 육성을 통한 에너지 믹스 확대에 힘을 싣는 기류가 감지된다.

황정아 민주당 의원은 대선 직후인 지난달 12일 ‘SMR특별법(소형모듈원자로 기술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SMR과 이를 활용한 시스템의 연구개발, 실증 등 관련 기술개발 촉진 및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민간 참여 활성화를 위한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그동안 원전 관련 법안은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SMR만을 위한 법안 발의는 이번이 처음이다.
두산에너빌리티 본사(경남 창원)를 지역구로 품고 있는 허성무 민주당 의원 역시 ‘SMR 진흥특구’ 조성을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허 의원은 “산업용 전기요금이 중국보다 1.5배 비싼 현실 속에서, 간헐성·계절성을 지닌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국가 제조 경쟁력을 지킬 수 없다”며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를 고려해 원전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SMR 부지 후보로는 경북 경주시·군위군, 경남 창원시 등이 거론된다. 이 중 경주시는 감포읍 나정리와 대본리 총 222만m² 부지에 총 3895억원을 들여 SMR 개발을 주도할 ‘문무대왕과학연구소’를 건설하고 있다. 올해 말로 예정된 1단계 시설이 준공되면 국내 첫 SMR 전문 연구기관이 문을 열게 된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한국의 SMR 산업이 글로벌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지원과 실증사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이미 2020년 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SMR 연구개발과 실증사업에 장기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영국은 2023년 대영원자력부를 설립해 SMR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부지 선정과 관련한 신중론도 제기된다. 여당은 현재 한수원이 진행 중인 지자체 자율유치 공모에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원이 의원은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갖고 적합한 부지 몇 군데를 먼저 제시한 후 해당 지역의 주민 동의 절차를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지자체 자율 공모를 먼저 한 뒤 평가 결과 해당 지역이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되면 시간과 행정력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SMR 기술은 아직 전 과정에 걸쳐 실증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실제 운영 사례도 없다. 안전성과 경제성 역시 대부분 이론적으로만 검증된 상태다. 환경단체들은 대형 원전보다 상대적으로 도심이나 민가에 인접해 설치되는 SMR이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SMR특별법 발의 직후 환경운동연합은 “SMR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를 하나의 압력용기에 통합한 구조로 설계돼 냉각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지역과 인접한 데다 격납용기도 작아 방사선 누출 위험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원자력학계도 반박 입장을 내놨다. 한국원자력학회 관계자는 “SMR은 대형 원전 대비 출력이 낮아 사고 시 냉각해야 하는 잔열이 적다”며 “외부 전원 없이 중력과 온도 차 등을 이용해 안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피동안전계통을 반영해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원전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수출을 확대하고 있고, SMR산업 역시 글로벌 잠재력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 확보 차원의 기술선점이 필요하다”면서 “나아가 목표대로 2038년 SMR 1기를 건설하려면 안전성·경제성 확보를 위한 실증 사업 추진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