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의 익명성을 악용한 불법 외환거래가 급증하면서, 최근 9년간 14조 원에 달하는 불법 거래가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은 ‘환치기’ 등 중대 외환범죄로, 가상자산을 이용한 불법 환거래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쿠키뉴스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받은 관세청 ‘가상자산 이용 불법외환거래 범죄 단속 실적’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5년 8월 말까지 총 265건, 약 13조 8809억원에 달하는 불법 거래가 적발됐다.
연도별로 보면 증가세가 뚜렷했다. 적발이 처음 집계된 2017년에는 1건(1억 원)에 불과했지만, ‘코인 붐’이 인 2018년 63건(1조 6252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2021년부터는 매년 1조 원 이상 규모의 불법 거래가 적발되고 있으며, 올해(8월 말 기준)만 해도 16건, 5813억 원이 확인됐다.
특히 가상자산을 이용한 불법 외환거래 대부분이 처벌 수위가 높은 중대 범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적발액 가운데 검찰 송치 금액은 11조 1357억원(80.2%)이나 됐다. 가상자산이 사실상 불법 외환거래의 핵심 통로로 자리잡은 셈이다.
단속 유형별로 보면 ‘가상자산 관련 환치기’가 가장 많았다. 관세청이 지난 9년간 검찰에 송치한 11조1356억 원 규모의 범죄 중 85.3%(9조 5042억원)이 환치기였다. 환치기는 은행을 포함한 공인된 환전 경로를 피해 국내 자금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해외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는 불법 은닉·송금 수법을 말한다.
과태료 부과 대상 단속 유형 중에서는 ‘은행을 통하지 않은 지급·3자 지급’이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해당 유형의 과태료 부과 규모만 8676억원에 달했다.
수법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예컨대 A씨는 해외에서 국내로 송금을 요청한 의뢰인의 돈으로 현지에서 가상자산을 매입한 뒤 이를 국내로 옮겨 매도하고 지정된 수취인에게 계좌이체나 현금으로 약 2800억원을 전달한 혐의로 적발됐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국내 D사가 가상자산 구매대금을 홍콩으로 송금하기 위해, 현지 기업 간 ‘골드바 거래’를 가장한 중계무역 방식을 활용했다.
반면 단속 여력은 제자리걸음이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불법 외환거래가 늘고 있지만, 관세청 단속 인력은 최근 5년간 약 150명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최 의원은 “가상자산의 익명성을 악용한 불법 외환거래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며 “외국환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국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 법령과 체제를 조속히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 의원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국경 간 거래를 상시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의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에서 논의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