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장기화되며 붕괴됐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 체계가 회복의 실마리를 찾았다. 의대생의 전원 복귀 선언에 이어 전공의들도 하반기 수련에 돌아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복귀를 넘어 향후 전공의들이 어떤 방식으로 수련을 이어가고 교수, 간호사 등 병원 내 인력들과 어떻게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할지가 수련 체계 정상화를 위한 핵심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수련 받기를 포기한 전공의들의 9월 복귀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대전협 비대위)는 지난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났다. 또 15일엔 수련병원장 단체인 대한수련병원협의회를 만나 복귀 방안을 협의했다.
지난달 말 강경 노선을 이끌던 박단 전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물러나고, 협상 기조의 한성존 신임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전공의 내부 분위기는 대정부 투쟁보다는 대화하는 방향으로 쏠렸다. 한 위원장은 취임 직후 김민석 국무총리를 대면하고 정부와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는 등 수련 복귀 쪽으로 힘을 실었다.
새 정부도 연일 의료계와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전 정부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국무회의에서 의대생들의 복귀에 대해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의정 갈등을 해소하는 대화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대화가 부족했다”며 “정부 당국은 의료인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공공재인 지역·필수·응급의료의 공백을 빠르게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9월 수련’ 급물살 탔지만…복귀 요구사항 걸림돌
하반기 전공의 모집은 통상 7월 3~4주 차에 시작해 상반기 모집 결원이 발생한 과에서 추가로 이뤄진다. 올해 수련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는 총 2532명으로, 의정 갈등 이전 1만3531명의 18.7%에 불과하다.

9월 수련 재개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정부가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 요구사항을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사직 전공의들은 입영 대기 중인 전공의가 복귀하면 수련이 끝나기 전까지 입대를 연기하고, 이미 입대한 전공의들도 전역 후 기존 수련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수련의 연속성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입영 대기 중인 사직 전공의는 2400여명으로 알려졌다.
이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 인해 의사가 감당해야 하는 민·형사상 소송 부담 완화, 전문의 자격시험을 2월에 이어 8월에 추가로 하는 ‘시험 특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수련 공백이 3개월을 넘으면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이 제한된다. 현행 규정상 레지던트 3~4년 차는 9월에 수련을 재개하더라도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문의 시험에 응시하기 어렵다. 대전협 비대위는 오는 19일 총회를 열고 복귀 요구사항을 확정할 방침이다.
의료계는 전공의 복귀 이후 이들을 어떻게 교육해 필수의료과를 선택하게 할지가 중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전협 비대위가 최근 사직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수련을 재개할 생각이 없다’고 답변한 전공의 72.1%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과목 전공의였다. 필수과들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정원 100%를 채웠던 소아청소년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이후 꾸준히 하락해 2024년 상반기 30.9%에 그쳤다. 매년 전공의 정원의 90% 이상을 확보하던 산부인과 역시 지난해 상반기엔 70%를 가까스로 넘겼다.
전담간호사·교수·전공의 관계 회복 필요
무너진 전공의 수련 체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양질의 전문의를 양성하려면 병원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우선 사직 전공의들이 1년 반가량 병원을 떠나 있는 동안 그 빈자리를 전담간호사(PA간호사)가 메워온 만큼 복귀 시 업무 조정이 불가피하다. 전담간호사들은 ‘간호법’ 시행으로 지난달 21일부터 의사의 업무였던 마취 전후 환자 모니터링, 분만 과정 중 내진, 진료기록 초안 작성, 피부 봉합, 골수 천자 등 일부 시술·처치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진료 과정에서 전공의와 간호사 간 마찰이 생길 우려가 있다. 조윤정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전공의 복귀 이후 병원이 예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많은 피해가 누적됐기 때문”이라며 “전공의가 해오던 업무의 일부를 전담간호사가 맡아온 만큼 어느 정도 조정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병원 시스템도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담간호사 확대로 전공의들의 노동 부담이 일부 경감되고, 수련 중심의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힘을 합쳐야 환자 치료가 잘 이뤄질 수 있다. 관계 회복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함께 일하며 다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공백이 이어지는 동안 멀어진 교수와 전공의 사이도 봉합해야 한다. 그간 일부 전공의들은 교수들을 ‘중간 착취자’라고 비판하며 갈등을 빚었다.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구조를 교수들이 방관해왔다는 주장이다. 지난 6월부터 수련을 재개한 장재영 서울대병원 전공의(대한의료정책학교 교육연구처장)는 “교수와 전공의 관계는 수직적 구조 안에서 세대 차이가 존재한다. 과거 교수들은 추가 근무나 긴 시간의 수련을 당연하게 생가했지만, 요즘 전공의들은 근로 환경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면서 “양측의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며, 갈등은 의료계가 사회 흐름에 뒤늦게 적응해 가는 과정이다”라고 짚었다.
먼저 수련에 복귀한 전공의와 뒤늦게 돌아온 전공의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장 전공의는 “6월에 복귀하면서 동료로부터 ‘너랑 이제 안 보겠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먼저 복귀한 사람과 늦게 복귀하는 사람들 사이에 거리감이 있는게 사실이다”라면서도 “결국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 모두가 다시 한 공간에서 일하게 되면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