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중은행이 외국인 전용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는다. 한 번 거래한 은행을 꾸준히 이용하는 외국인을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다만 대출을 받은 외국인이 본국으로 귀환했을 경우 대출 회수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은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은 이르면 이달 말부터 외국인 전용 신용대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이 이달 말 외국인 대상 신용대출 상품을 가장 먼저 선보인다. 외국인의 초기 정착 비용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한도를 1000만원으로 설정했다. 뒤이어 농협은행과 신한은행도 각각 3000만원, 2000만원 한도 상품을 다음 달 말 출시할 예정이다.
농협은행과 신한은행이 외국인 전용 신용대출을 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나은행은 과거 3000만원 한도로 ‘외국인주거래우대론’을 운영했지만 리스크 관리와 보수적인 운영 기준 등을 이유로 2022년 1월 이후 판매 중단했다. 이후 3년여 만에 외국인을 겨냥해 신상품이 등장한 셈이다.
은행권의 외국인 신용대출 상품 출시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꾸준히 늘면서 이들을 새로운 고객층으로 확보하려는 취지다. 법무부 출입국자 및 체류 외국인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20년 203만명에서 2024년 말 265만명으로 약 30.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장기체류(90일 초과)한 외국인도 42만명에서 60만명으로 43%가량 늘었다. 한국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학업 및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외국인이 많아진 것이다.
외국인의 소득 수준이 눈에 띄게 개선된 점도 출시에 한몫했다. 국내 외국인 임금근로자 중 월평균 임금이 300만원 이상인 비율은 2017년 10.4%에서 2024년 37.1%로 큰 상승 폭을 보였다. 200만원 이상인 비율 역시 같은 기간 57.3%에서 88.3%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5대 은행(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 외국인 신규 고객 수도 2020년 말 약 18만4000명에서 2023년 말 37만70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은행권은 외국인 고객의 경우 ‘거래 충성도’가 높아 매력적인 고객층이라고 평가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국인은 은행 업무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해 불편을 겪는다”며 “이 때문에 한번 주거래 은행을 정하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외국인끼리 뭉치는 끈끈한 네트워크를 통해 지인 추천으로 신규 고객이 유입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 입장에서 한번 유입된 외국인 고객이 장기 거래와 추가 고객 유치로 이어지는 만큼 이들을 위한 신용대출 등 새로운 상품 개발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대출 ‘리스크 관리’는 은행의 숙제로 남아있다. 외국인 고객이 출국하면 은행은 빌려줬던 돈을 회수하기 어려워 손실을 입는다. 시중은행이 지금까지 외국인 대상 신용대출 상품 출시에 망설였던 이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무래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심사 기준을 보수적으로 적용하고, 대출 만기도 비자 기한에 맞춰 설정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검토될 예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품 출시 이후 대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지 모니터링하면서 관리 체계를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