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혁신 신약 개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R&D) 예산 지원, 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것이다. 파이프라인 규모나 글로벌 기술이전 실적도 한국을 앞지르고 있다. 한국의 제약·바이오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뒷받침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28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중국 우정 증권(China Post Securities)은 중국 제약사들의 올해 상반기 기술 수출 규모가 660억 달러(약 92조2218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24년 한해 수치를 초과한 규모다.
최근 중국 바이오 기업들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과 수십조원에 달하는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지난 6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인공지능(AI) 플랫폼과 전임상 항암제 포트폴리오에 대한 접근을 위해 중국의 CSPC 제약 그룹에 50억 달러(약 6조9890억원) 이상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기업 크리스탈파이(XTalPi)는 미국 화이자, 프랑스 사노피와 AI 기반 신약 개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영국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중국 장쑤 헝루이 제약과 중국 사상 최대 규모인 125억 달러(17조4675억원) 규모의 12개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개발·판매 독점 계약을 발표했다.
5년 전만 해도 중국의 신약 후보물질이 전 세계 제약업계 라이선스 계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미만에 불과했다. 키움증권의 제약·바이오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는 40%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배경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꼽힌다. 대규모 R&D(연구개발) 투자, 낮은 규제 장벽, 숙련된 인재 수혈 등 삼박자가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지난 2016년 ‘건강중국 2030’ 계획을 발표하며 헬스케어 투자 규모를 2030년 16조 위안(약 3000조원)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바이오 산업에 투입한 자금은 300억 위안(약 5조8000억원)에 달한다.
관련 제도 역시 ‘네거티브 규제(법령에서 금지된 행위를 제외하고는 모든 행위를 허용하는 방식)’에 가까울 정도로 장벽을 낮췄다. 임상시험 신청 심사기한을 일부 조건 하에 30일로 줄이고, 수익성 없는 기술 스타트업의 상장을 지원하기 위해 상장 제도도 개편했다. 외국 전문 인력도 적극 수혈하는 모양새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외국의 젊은 과학 기술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오는 10월1일부터 새로운 비자(K비자)를 시행한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 바이오텍 대비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어, 서구 제약사들의 관심과 자금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텍 간 인수합병(M&A)이 성사되며 혁신 신약 확보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고, 임상 기간 단축 등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더해져 신약개발 환경 경쟁력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올해 의약품 기술 수출이 지난해 대비 활발해졌지만, 선두에 있는 중국을 추격하기 위해선 여러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한 상황이다. 글로벌데이터의 거래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 의약품 라이선스 계약의 거래 가치는 올해 76억8000만 달러(약 10조67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대비 113% 증가한 수준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본지에 “중국의 제약·바이오산업이 한국을 앞지른 지 꽤 됐다”면서 “최근 중국 제약·바이오산업을 미국과 유럽에 비교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중국만큼 투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세제 혜택이나 민간 투자를 열어주는 등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며 “경쟁국의 제도를 참고해 혁신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