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 전장의 관건이 개별 무기 운용 능력이었다면, 미래 전장에서는 AI 기반 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센서와 무기체계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동하는 ‘초연결’ 기술이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 ‘전자전기’는 다수 적 레이더 신호를 동시에 교란하는 재밍 기술(Jamming, 레이다 방해)을 통해 적 방공망을 무력화하고, 아군 항공전력을 보호하는 무기체계로 주목받는다. 전투기 편대가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적 방공망에 침투하는 항공전력 보호도 담당하는 역할을 맡는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한화시스템, LIG넥스원과 대한항공이 팀을 꾸려 1조8000억원 규모의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이는 고성능 전자전 항공기 4대를 2034년까지 확보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캐나다 봄바디어사의 G6500 비즈니스 제트에 전자전 임무 장비를 장착해 전자 공격과 방어, 위협 탐지 등 전자전 전 분야를 아우르는 독자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이번 사업은 KAI와 LIG넥스원이 수익 배분과 주도권 문제로 협력 관계를 청산하고 각각 다른 파트너와 컨소시엄을 꾸리며 경쟁이 격화됐다. LIG넥스원이 기존 ‘체계통합’ 역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체계종합’을 맡아 사업 주도권을 선언한 것이 결별의 결정적 계기였다.
군 체계 개발 사업은 사업 단위마다 개별적으로 개발하는 ‘체계 통합’과 사업 전체를 아우르는 ‘체계 종합’으로 나뉜다. 체계종합 사업자는 향후 수십 년간 유지·보수(MRO) 사업을 독점할 수 있고, 수출 시장에도 주도적으로 진출할 수 있어 전략적 가치가 크다. 이번에 LIG넥스원이 대한항공과 손잡고 독자 노선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
KAI는 국내 유일의 항공기 설계·개조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어 민항기 개조 과정에서 필요한 감항 인증과 체계통합 역량에서 우위를 내세운다. 이를 기반으로 차세대 KF-21 전투기 기반 전자전기 개발로 미래 기술 로드맵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LIG넥스원은 전자전 장비 분야에서 축적한 핵심 기술력을 기반으로 대한항공과 협력, 임무 장비 국산화와 지속 업그레이드를 추진해 국내 ‘항공 전자기술 사업’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47년간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축적한 전자기전 핵심기술도 바탕이 돼 다수의 국가 전략무기 전자전 장비 개발 수행 역량을 고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LIG넥스원이 전자전 임무장비 개발 파트를 전담하고, 대한항공이 항공기 구매, 형상설계, 체계통합, 임무장비 항공기 장착 등을 담당하는 것”이라며 “민용 비즈니스 제트기를 군용 전자전 임무항공기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양사의 강점이 만나 시너지를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업의 승패는 전자전 장비 냉각기술, 항공역학 설계, 아군 무기체계와의 안전성 확보 등 고난도 공정을 총괄하는 ‘체계종합 역량’이 가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자전기 독자 개발 능력을 확보한 국가는 미국·러시아·중국뿐이어서, 한국이 세계 네 번째 전자전기 개발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험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각 참여업체가 9월 초 최종 제안서를 제출하면, 10월쯤 우선 협상 대상이 선정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경쟁은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첨단 전장 주도권 확보와 글로벌 수출시장 선점을 겨냥한 전략적 경쟁이기도 하다. 업계는 이번 프로젝트가 한국 방위산업 자립을 공고히 하고, 전자전기 분야에서 미래 전투력 강화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머지않아 한국 해군은 한국형 해상초계기를 전력화할 예정”이라며 “본 연구 개발사업을 통해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형 해상초계기 사업에 참여하고 미래에 한국 방산수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