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임기 첫해부터 건강보험에 대한 법적 책임을 외면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팍팍한 살림살이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이 내야 할 건강보험료는 오르지만, 정작 국가가 보태야 할 지원금 비율은 뒷걸음질 쳤기 때문이다.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6년 예산안에 편성된 건강보험 정부 지원금은 12조7171억원이다.
액수만 보면 올해(12조6093억원)보다 1078억원 증가한 듯하지만, 핵심은 비율에 있다. 정부는 법에 따라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내년도 지원금은 예상 수입액의 14.2%에 불과하다. 이는 올해 지원 비율인 14.4%보다 0.2%포인트(p) 줄어든 수준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2년 연속 동결했던 건강보험료율을 3년 만에 1.48% 인상하기로 하면서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이 소득의 7.19%로 오르게 됐다. 정부가 자신의 몫은 줄이면서 그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넘긴 셈이다. 건강보험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던 정부의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보다.
정부의 ‘의무 불이행’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은 일반회계에서 14%, 담배부담금으로 조성된 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각각 지원해 총 20%를 채우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이 규정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평균 15.3%였던 지원율은 문재인 정부에서 14%대로 하락했으며, 윤석열 정부 역시 13∼14%대에 그쳤다. 이재명 정부는 국고 지원 확대를 공언했음에도 그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오히려 첫해부터 지원 비율마저 축소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예산을 편성할 때마다 보험료 인상률, 가입자 증가율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예상 수입액을 의도적으로 낮게 추계하는 방식으로 지원 규모를 줄여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고물가, 저임금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큰 상황에서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기업과 정부의 부담을 늘려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한국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기업의 건보료 부담이 낮은 편이라는 지적이 있다. 건강보험의 재정 안정성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인 만큼 정부가 법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