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공사에 장애인 발 묶여도…대책은 ‘무방비’

승강기 공사에 장애인 발 묶여도…대책은 ‘무방비’

‘장애인 편의법’에 관련 규정 전무…인권위, 정부·국회에 법 개정 권고

기사승인 2025-09-04 06:00:08
점검 중인 엘리베이터.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연합뉴스

아파트 승강기 교체 공사 때 장애인 이동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나왔다. 승강기는 장애인 생활에 필수적인데, 관련 법 규정이 없어 사실상 입법 공백 상태라는 지적이다.

인권위는 지난달 28일 5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노후 승강기 교체 공사 시 장애인 이동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동시에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 장관과 국무총리에게 관련 법률 개정을 요구했다.

이번 조치는 중증장애인 A씨 등 입주민이 “승강기 운행 중단으로 외출 자체가 불가능해 차별을 받았다”며 진정을 낸 데 따른 것이다. 아파트 측은 “노후 승강기 교체가 불가피했고 불편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고 해명했지만, 인권위는 “외출에 필수적인 시설이 멈췄는데도 식료품 구매·병원 통원·배달물품 수령을 위한 방책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체 기간 단축과 대체수단 마련 등을 권고했다.

문제는 제도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인권위는 “장애인 등이 공동주택 편의시설을 이용하지 못할 때 불편을 최소화할 법적 장치가 없다”며 “따라서 아파트 측 책임만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행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는 승강기 공사 중 대책 마련 의무 규정이 없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21년 지체장애인 B씨는 승강기 교체로 출근을 못 하고, 자녀와 떨어져 한 달간 유료 시설을 이용해야 했다. 당시 아파트 측은 “집에 가만히 있으라”는 식으로 대응해 비판을 받았다.

유사 피해 가능성은 크다. 국토교통부 2023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아파트에 사는 장애인 가구 비율은 48%로 가장 높다. 통계청 조사에선 2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가 전체의 약 47%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권고를 넘어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복천 전주대 재활학과 교수는 “화재나 재난 상황에서 승강기가 멈추면 대피가 더 어려워진다”며 “소방서 등 긴급 연락 시스템을 의무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승강기 공사로 출근이 불가능할 경우 근로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간 장애인 피해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돼 왔다”며 “당사자들은 집에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근처 숙박시설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승강기 점검만으로도 장애인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다”며 “관련 논의가 더 본격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sur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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