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여당이 금융 정책·감독 기능을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원 등 4개 기관으로 쪼개기로 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컨트롤타워가 모호해지고, 감독 주체만 늘어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관련 내용이 담긴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이 최종 통과되면 금융위는 17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는다.
금융 정책과 감독 업무를 분리해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확보하자는 게 이번 개편의 취지다. 핵심은 금융위의 정책 기능은 재경부가, 감독 기능은 금감위가 맡는 것이다. 재경부는 경제 정책뿐 아니라 국제금융 정책 기능, 국내 금융정책까지 총괄한다. 금융위 내 금융정책국과 금융정보분석원(FIU)도 재경부로 이관된다. 금감위 산하에는 기존 ‘증권선물위원회’에 이어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신설된다.
금감원 산하에 있던 금융소비자보호처는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격상한다. 금소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검사·제재 권한까지 갖게 된다. 아울러 금감원과 금소원은 모두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향후 정부 경영평가를 받아야 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혼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무 부처를 해체하면 컨트롤타워가 모호해져 정책 집행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감독 기관이 늘어나면 금감위와 금감원, 금소원 사이에서 책임을 서로 미루는 이른바 ‘핑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초창기에는 업무 분장이 명확히 떨어지지 않아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내부 반발도 변수다. 금융위는 ‘서울 근무’라는 이점 덕에 행정고시 재경직 최상위권 합격자들의 선호를 받아왔지만, 개편이 확정되면 일부 직원은 기재부가 위치한 세종으로 근무지를 옮겨야 한다. 임금 체계, 직제, 근무지 이전 등 민감한 문제가 얽히면서 조직 내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금소원을 둘러싼 논란이 크다. 검사권이 중복되면 기관 간 신경전이 일어날 수 있다. 주력 업무가 소비자 민원 처리에 집중되면서 인력 선발 과정에서 혼란도 불가피하다. 한 금감원 직원은 “사실상 콜센터처럼 민원 업무를 도맡아야 하는데 누가 선호하겠느냐”고 토로했다. 금감원 노조 역시 성명을 통해 금소원 신설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상전만 늘어나는 격”…한숨 짓는 금융업계
금융업계는 모셔야 할 규제 당국이 더 늘어난다는 소식에 울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소원이 만들어질 경우 기관의 존립 명분을 위한 각종 규제가 신설되고, 금융사에 대한 통제 강도가 높아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리 역할을 잘 나눈다고 해도, 상전만 늘어난 격”이라며 “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늘어날 전망이다. 각종 정책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세종청사를 자주 방문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입법 추이를 살펴보기 위한 국회 활동까지 고려하면 정관계 소통을 전담할 대관 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직개편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정부조직법은 행정안전부 소관이지만,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등은 정무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정무위 수장이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야당 반발이 커질 경우 25일 본회의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앞서 여야는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금융당국 조직개편 문제로 파행을 겪었다. 당시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해체할 조직에 위원장을 왜 임명하냐”, “철거반장이냐”라며 목소리 높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