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86)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86) 

하를렘의 조선업과 할스 미술관의 <베긴 회 수녀와 수도승>

기사승인 2025-09-15 08:00:24
푸르른 하늘과 운하가 아름다운 하를렘.

네덜란드 하를렘의 성 바봉 교회 안에는 조선업의 발달을 보여주는 배 모형이 걸려 있다. 16세기와 17세기의 배 모형들은 프리깃 함(frigate), 커터(cutter)​​, 보이어(boyer)이다.​​ 내가 찾았던 교회 안에 배가 걸려 있는 경우는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옹플뢰르(Honfleur)와 이곳뿐이었다.

17세기 황금시대의 영광을 보여주는 범선들과 과거의 용맹했던 투지를 기억하기 위한 다미에타 등 하를렘의 역사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 

성 바봉 교회의 16~17세기의 배 모형.
 
프리깃(frigate) 함​.

프리깃 함 전면에는 나일강 하구의 다미에타(Damietta, 현재 디미아트) 항구를 나타내는 두 개의 탑이 보인다. 1219년 빌럼 1세가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자 하를렘 시민들은 이집트를 거쳐 성지를 정복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다미에타 입구는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처럼 굵고 거대한 쇠사슬로 방어막을 펼치고 있었다. 하를레메르인(Haarlemmers, 하를렘 시민)들은 모든 배에 용골 아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톱을 확보하여 나일강 항구의 입구를 공략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하를렘 기사단은 제5차 십자군 전쟁에서 다미에타를 정복한 공로로 빌럼 1세 백작으로부터 1245년 도시권을 획득하였다.  

​하를렘메르인들은 16세기에 스페인군의 공격으로 도시가 포위된 이후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과거의 영웅적인 행위를 떠올려 시민들을 고무시키 필요가 있었고, 이를 상기시키는 배가 성 바봉 교회에 자리하게 되었다.​​ 

커터(cutter)​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 유럽 해상에서 활약한 커터는 네덜란드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범선이다. 군사적 목적과 항해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이 선박은 빠른 속도와 기동성을 갖춘 날렵한 선체와 큰 세로 돛을 갖추고 있었다. 커터는 다양한 형태의 수상 교통 수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보이어(boyer) 

보이어는 네덜란드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배 모델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고 있을 때, 여러가지 해양기술을 배웠다. 이슬람은 노를 젖는 갤리 선을 범선으로 대체해 돛만으로 바람을 거슬러 항해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의 항해왕자 엔히크(Henrique)는 1415년, 먼 거리 항해에 적합한 선박 개발에 힘썼다. 그 결과 탄생한 캐랙(Carrack) 선은 삼각 돛을 장착해 역풍에도 전진할 수 있었고, 좁고 평평한 선체 덕분에 속력도 빨랐다. 이전에 사용하던 사각 돛은 역풍이 불어오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했다.

그러나 범선 앞뒤로 삼각 돛을 사용하여 역풍을 받으면 속도는 느리지만 지그재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역사에서 새로운 운송 수단의 출현은 곧 권력의 이동을 의미한다. 특히 편서풍이 부는 북위 30도와 60도 사이에서 역풍에도 앞으로 나가는 배가 필요했다. 콜롬버스의 산타마리아호도 캐랙선이었으며, 이는 해상 무역의 지형을 바꾸었고, 네덜란드는 이를 개발해 세계 무역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문맹자들을 위해 소와 양머리가 걸린 정육점과 나란히 서 있는 세 건물은 근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할스 미술관으로, 미술관 글자가 거꾸로 써 있다.  

그로테마르그트 광장에서 가장 화려한 소와 양머리가 그려진 붉은색 벽돌의 정육점은 근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할 관(Hal Location)이다. 18곳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여행길에 찾은 첫 번째 미술관이었기에 그 골목길의 전경이 아직도 선명하다. 등나무 꽃이 보라빛으로 피어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포토존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소박하고 정돈된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프란스 할스 미술관 .

프란스 할스 미술관은 17세기 초에 60세 이상의 독신 남성을 위한 구호소로 지어진 100년 이상 된 기념비적인 건물이었다. 구호소는 19세기에 고아원으로 사용되었으며, 1913년에 네덜란드 르네상스식으로 지어진 단층으로 된 미술관은 하를렘의 가장 유명한 황금기 화가인 할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곳에는 그의 작품 12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4 M 정도의 좁은 골목에 자리해 전경을 찍을 수가 없었다. 

네덜란드는 플랑드르와 정치와 문화에서 다른 성향을 보였다. 검소한 칼빈 파 실용주의자 신교도들이 세운 네덜란드는 종교화가 금지되었다. 그래서 화가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찾아 스스로 미술 판매 시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네덜란드에만 정물화가가 500명이나 활동하였으며 풍경화, 해양화, 정물화 등이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다. 중계무역으로 부유해진 중산층은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렸고, 정육점이나 생선가게에도 벽마다 빽빽하게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구매자의 요구와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인기도 있고 돈도 벌었다.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도 빵값 대신 지불해, 그림을 보러 빵집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다. 간혹 그림을 커튼으로 가려 놓은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되팔아 이윤을 남기려고 먼지나 연기로부터 그림을 보존하기 위해서 였다.  

코르넬리스 판 하를렘, <수도승과 베긴 회 수녀>, 1591, 116x103cm, 프란스 할스 미술관 

할스 미술관에서 본 가장 충격적인 작품은 코르넬리스 판 하를렘(Cornrelis Cornelisz van Haarlem, 1562~1638)의 <수도승과 베긴 회 수녀>였다. 코르넬리스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매너리즘 화가이자 제도사였다. 매우 선정적으로 묘사된 '하를렘의 기적’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작품에 대한 강한 여운이 남아 있었는데 벨기에 브뤼헤에서 베긴 회 수녀원을 보게 되었다. 

벨기에 브뤼헤의 베긴 회 수녀원(Begijnhof).

브뤼헤의 베긴 회 수녀원(Begijnhof)은 아름다운 사랑의 호수 옆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약 780년 전, 1245년에 플랑드르 백작 부인이 설립하여 지금은 베네딕트파 수녀들이 거주하고 있다. 무성한 초목과 흰색 벽에 붉은 기와가 어우러진 이곳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베긴 회 수도원는 중세 후반기에 등장한 여성 공동체로, 독신으로 생활하며 봉사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수녀원과 달리 규칙이 엄격하지 않았다. 한 수녀가 임신과 출산을 숨긴 혐의로 기소되었다. 의료를 담당하는 가톨릭 수사가 불은 젖을 짜서 모유가 나오는 사실로 혐의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수녀의 젖이 포도주로 변했다. 붉은 와인은 ‘그리스도의 피’로 그의 희생을 상기하며 성찬에 쓰이는 신성한 제물이다.  

이 작품은 인체의 과장된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구도를 통해 매너리즘(Mannerism) 양식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매너리즘은 16세기 유럽 미술에서 등장한 경향으로, 고전주의가 추구하던 조화와 균형을 탈피하여 인위적이고 극적인 표현을 강조한다. 이 그림은 종교적 주제를 담고 있지만,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인물들이 추구했던 가치나 삶의 방식은 시대적 관점에 따라 달리 읽힐 수 있으며, 이는 곧 작품이 지닌 해석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화가는 진실을 표현하기보다는 가톨릭 교회의 권위와 종교적 질서에 순응하며 그에 맞춘 시각적 언어를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수도승과 베긴 회 수녀>는 대학 때 본 연극인 윤석화의 <신의 아그네스, 1983>를 떠올리게 한다. 몬트리올 교회에 달려 있는 작은 수녀원의 아그네스 수녀가 아이를 낳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16세기 성직자의 타락을 그린 것이 <수도승과 베긴 회 수녀>라면 20세기엔 <신의 아그네스>이다.  

세상에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이 공존한다. 이질적인 것들이 충돌하고, 때로는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은 그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끌어안고, 충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낸다. 예술은 갈등을 봉합하려 하지 않으며, 그 틈 사이에서 인간의 진실을 드러낸다. 그렇게 예술은 불가능해 보이는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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