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년 만에 흥행 수입 140억엔 이상을 기록한 일본 실사 영화 ‘국보’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국보’ 기자회견이 21일 부산 우동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열렸다. 현장에는 이상일 감독, 일본 배우 요시자와 료가 참석해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이상일 감독은 “2000년에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서 이 영화제가 발전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됐다”며 “젊었을 때 많이 도움을 받았는데 보은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해서 찾게 됐다”고 초청받은 소감을 밝혔다.
처음 부산을 찾은 요시자와 료는 “초청받게 돼서 영광”이라며 “어제 (한국에서) 처음 상영했는데 관객들이 GV에서 날카로운 질문들을 해주셨다. 진지하게 영화를 봐주셨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체감한 분위기를 전했다.
‘국보’는 전통 연극 가부키에 생을 바친 이들의 삶을 그린다.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앞서 일본에서 개봉 102일 만에 관객 수 1000만, 흥행 수익 142억엔(한화 약 1335억원)을 넘긴 화제작이다.
특히 ‘국보’는 ‘춤추는 대수사선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에 이어 역대 일본 실사 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재일 한국인 감독이 이러한 성적을 낸 것은 최초다. 여기에 제98회 미국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 일본 대표작 출품 소식도 알렸다. ‘훌라걸스’, ‘악인’, ‘분노’ 등으로 유수 시상식에서 수상한 데 이어 다시금 거장으로서 입지를 굳힌 셈이다.
이상일 감독은 이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까닭을 묻는 말에 “잘 모른다. 상상도 못 했다”고 한국어로 답했다. ‘국보’는 극장이 아닌 현장에서 보는 예술로 인식되는 가부키가 소재인데다 러닝타임만 3시간에 달하다는 점에서 흥행을 예상하기 힘들었다는 전언이다. 다만 이 감독은 고심 끝에 “많은 일본분이 가부키에 익숙하지만 잘 볼 수 없다. 새로운 발견이었을 거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배우분들이 연기 인생을 걸고 도전한 작품이라 매력을 느끼신 것 같다”고 추측했다.

‘국보’는 요시자와 료, 요코하마 류세이, 와타나베 켄 등 일본 대표 배우들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통해 주목받은 쿠로카와 소야까지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극중 요시자와 료는 아웃사이더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3대 하나이 한지로에 오르는 키쿠오 역을 맡았다. 가부키 연습에 1년 반을 매진했다는 그는 “굉장히 어렵더라. 어떻게 아름답게 보일지 고민하며 준비했는데, 감독님이 감정에 맞춰 춤춰달라고 하셨다”고 돌아봤다. “감정대로 춤을 춰야 하는데 가부키 배우가 아니라 연기자가 출연한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도 덧붙였다.
흥행 비결에 대해서는 “가부키 소재지만 연기자의 인생을 그린 것이라 보편적인 테마다. 가부키를 아시는 분들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짚었다. 이어 “칸 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 초청이다. 하나 하나 열심히 정성스럽게 만들어가는 방법말곤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보’는 가부키에 대한 이야기이자 혈통에 대한 이야기다. 이상일 감독은 “가부키 세계에서 혈통을 타고난 슌스케와 외부에서 온 키쿠오의 상황이 녹여져 있다. 혈통을 타고났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나름의 운명을 쥔다. 아웃사이더도 나름대로 고뇌가 있다. 서로 짊어진 것을 가지고 예술가로서 살아가면서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영화다.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고, 그 풍경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상일 감독은 아직 국적을 밝히지 않은 재일 교포 3세다. 이에 폐쇄적인 가부키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키쿠오에 그의 정체성을 투영한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 감독은 “제 피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기겠다”고 한국어로 말한 뒤 “‘국보’라는 작품에 한정돼서 말씀드리자면 사회 변두리 인물을 주목하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 아이덴티티가 작용된 것 같긴 한데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