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EU보다 불리…한국산 의약품 ‘100%’ 관세 폭탄 눈앞

일본·EU보다 불리…한국산 의약품 ‘100%’ 관세 폭탄 눈앞

美 트럼프 대통령 “10월1일부터 의약품 100% 관세 적용”
일본, 유럽은 15% 적용…무역 협상 타결 못한 한국은 ‘100%’ 직격탄
“100% 관세 적용된다면 한국에 불리…적용 기준 모호해 시장 혼란”

기사승인 2025-09-30 06:00:2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연합뉴스

한국이 대미 수출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공산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0월1일부터 의약품 수입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면서다. 심지어 일본, 유럽연합(EU) 등 무역협상을 타결한 나라에는 15% 관세만 적용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경쟁국 대비 고율의 관세를 피할 수 없게 되면서, 당분간 불리한 상황을 직면하게 됐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을 통해 “다음달 1일부터 모든 브랜드 의약품 또는 특허 의약품에 대해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착공과 공사가 진행 중인 상태를 포함해 미국 내 생산시설을 건설 중인 기업은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의약품 관세율이 무역협상 여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책정됐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약품 관세를 예고한 다음날인 26일 로이터·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백악관 관계자는 ‘일본과 EU처럼 협상을 타결한 국가에 의약품 관세를 부과할지’ 묻자 “협정의 일부로서 15% 상한을 준수할 것”이라고 답했다. EU는 지난달 협상 타결 후 최혜국 대우(MFN) 관세와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에 따른 관세를 합산한 관세율이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 역시 100%가 아닌 15% 관세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백악관 관계자는 “일본 의약품도 협정에 따라 같은 관세가 적용된다”고 전했다. 일본은 의약품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으나, 아직 행정명령 등으로 명문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협상이 타결된 점을 고려해 15%를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협상이 아직 타결되지 않은 한국, 영국, 스위스 등은 100% 관세율을 적용받을 처지에 놓였다. 한국은 지난 7월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에서 최혜국 대우를 약속 받는 등 큰 틀에서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최종 협상 타결이 미뤄지고 있어, 당분간 한국산 의약품은 100% 관세를 적용받을 것으로 보인다.

관세 대상이 되는 의약품 범위는 아직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한국 기업들이 영향을 받는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은 제외되거나 면제될 가능성이 열려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브랜드 의약품과 특허 의약품’ 같은 완제 의약품을 관세 부과 대상으로 언급하면서다. EU와의 협상 과정에서도 제네릭 의약품은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제네릭 의약품은 국민 가격 민감도가 높기 때문에 제외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재 한국 제약사들은 트럼프 관세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당장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업은 이미 미국에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 셀트리온은 지난 23일 일라이 릴리와 미국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소재 의약품 생산 공장을 약 46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SK바이오팜도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소재 업체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뉴욕주에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인천 송도에만 공장이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내 공장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 완제의약품이 아니라 원료의약품을 수출하고, 현지 파트너사를 통해 공급하는 유통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번 조치의 직격탄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는 미국 제약사 존슨앤존스(J&J)측에서 생산과 유통 등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의약품 관세가 부과되면, 그 비용을 공동으로 분담해야 하는 만큼 압박이 커질 수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슈 브리핑을 통해 “(100% 관세 부과 시) 미국에 특허, 브랜드 의약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의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파트너사를 통해 유통 중인 기업들도 장기 계약조건 변경 요청 등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29일 쿠키뉴스에 “일본, 유럽은 15% 관세를 적용받고, 한국은 100% 관세가 적용될 경우 불리해지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현재 완제의약품이나 특허의약품에 대한 범위도 불명확해서 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관세 부과 방침은 다국적 제약사들을 타깃한 것으로 보이기도 해서, 빅파마나 의회 움직임 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직 기준이 모호해 추후 세부 발표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대미 의약품 수출에 영향이 크지 않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29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미국 관세 부과 동향에 따른 기업들의 애로를 듣고 실질적인 정부의 기업 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간담회에는 SK바이오팜, 삼성바이오로직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대웅제약, 셀트리온 등 의약품 수출 기업 5곳이 참여했다. 정부는 관세 피해기업들의 경영 안정화를 위해 13조6000억원의 긴급 경영자금 지원, 270조원 무역보험 공급, 물류비 지원 배 확대 등 대체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있다. 정은영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대외적인 위기 속에서도 의약품 수출 호조세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민관이 협력하여 관세 대응에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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