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 배우 이소이(25)의 올 추석은 여느 때와 같지만, 다음 연휴는 제법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쓰러져도 좋으니까 1년 내내 작품을 하고 싶다”는 호기로운 바람이 곧 이뤄질 조짐이 보인다는 뜻이다. 괜한 확신은 아니다. 데뷔작인 SBS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애마’까지 손바닥 뒤집듯 얼굴을 갈아 끼운 전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강렬한 캐릭터들을 척척 소화해 놓곤 아직 칭찬에는 영 약한 모양새였다. 지난달 30일 서울 가산동 쿠키뉴스 사옥에서 만난 그는 거듭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이소이의 최신작은 8월22일 공개된 ‘애마’다. ‘애마’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극중 이소이는 영화사 대표 구중호(진선규)를 이용해 배우가 되려고 하지만 비참한 결말을 맞는 황미나 역을 맡았다. 그의 열연은 놀라웠다. 짙은 화장에도 탁월한 감정 표현이 돋보였고, 자칫하면 밉기만 할 캐릭터를 공감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냈다. 한데 핑크빛 한복을 입고 말간 얼굴을 한 그에게서는 좀처럼 황미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본만 파고, 인물 분석 리포트까지 준비했다는 말이 100% 진실로 다가왔다.
특히 최실장(이성욱)의 차를 타고 고위 관계자 자제들의 마약 파티로 향하는 신, 바로 이어지는 마약 파티 시퀀스는 그야말로 이소이를 위한 판이었다. “최실장과의 장면은 고민이 많았던 신이었어요. 저 자신을 내려놓는 게 1번이었고, 그다음은 제가 인물로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전 지식을 갖고 있는 게 중요했어요. 사실 그렇게 원활하게 신을 찍진 못했는데요. 감독님이 중요한 신일수록 ‘힘을 빼고 담백하게 해야 한다’고 말해주셨어요. 마약 신 같은 경우는 다른 영화나 드라마를 따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자료 조사를 많이 했었고요.”

이소이는 판이해 보이는 황미나와의 공통점으로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을 꼽았다. 쉽게 말하면 ‘독기’일 텐데, 한 장면에 얽힌 비하인드를 들어 보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구중호 저택 수영장에서 술 취한 채 ‘물 마시면 안 죽어’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그때 사실 정말 힘들었거든요. 영하 17도였고 2주 동안 굶은 설정이어서 제가 실제로 2주 동안 거의 안 먹었어요. 처음으로 미나의 무기력한 모습이 나오는데 연기로 커버할 수 없는 외형이라는 게 있잖아요. 최대한 흡사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만큼 더 뿌듯했고요.”
이해영 감독, 작품을 함께한 선배 배우들도 그의 노력을 알아봤다. “(김)종수 선배님과 (진)선규 선배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잘하더라’고 말씀해 주셔서, ‘이렇게 잘하시는 분들이 나한테?’ 하면서도 너무 감사했죠.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건 선규 선배님이 다 맞춰주셨던 덕분이에요. 매번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어봐 주셨거든요. 처음에는 조심스러웠지만 선배님이 편하게 해주셔서 의견을 드리기도 했어요. (이)해영 감독님은 현장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걱정할 때도 ‘소이야, 그냥 네가 미나야. 그냥 해’ 하시거나, 주변 분들한테 ‘소이 연기 잘해’ 해주시니까 감사한 마음에 더더욱 열심히 하게 됐었죠.”
같은 맥락에서 ‘더 글로리’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전개상 꼭 필요했던 신 스틸러, 학교폭력 피해자 윤소희가 바로 이소이였다. 그는 ‘목소리’만으로 안길호 감독의 눈, 아니 귀에 들었다. “사실 ‘더 글로리’는 떨어진 줄 알았어요. 오디션 때 감독님이 저를 안 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촬영하면서 감독님한테 ‘저 안 보셨잖아요’라고 말했더니, ‘목소리 들으면 알지’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어릴 적 막연히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이소이는 진로 고민이 한창인 19살 때부터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이 직업에 뛰어든 그는 “연기할 때만큼 행복하고 재밌는 게 없다”는 확신으로 지금까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행복을 놓치기 싫어요. 이외에 뚜렷한 이유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해요. (신인에게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자신감만 있는 게 아니라 근거를 차곡차곡 채워야 하죠. 지금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부딪혀 보려고 해요.”
모처럼 한복을 입고 데뷔 첫 인터뷰를 가진 신인답게 로맨스 사극에 대한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롤모델 언급 역시 잊지 않았다. “‘혼례대첩’으로 사극을 잠깐 하긴 했었는데, 이번에는 결혼하지 않아서 머리를 땋은 아씨 역할로 로맨스를 해보고 싶어요(웃음). 아무래도 로맨스적으로 보인 얼굴이 없다 보니까, 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먼 훗날 우리’나 ‘선재 업고 튀어’ 같은 청춘물도 정말 좋고요. 롤모델은 전도연 선배님이에요. 정말 존경하는 선배님인데, 선배님처럼 연기하고 싶습니다.”
내내 미소를 띠며 질문에 차분하게 답변한 이소이는 끝으로 야무진 추석 인사까지 건넸다. 이같은 면모는 신인 같지 않았다. “다들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행복한 하루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안한 하루 같아요. 매일매일 그런 하루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고,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제가 찍는 작품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