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약국서 코로나19 백신 맞았다…한국도 약사 권한 확대 논의 불붙나 

해외는 약국서 코로나19 백신 맞았다…한국도 약사 권한 확대 논의 불붙나 

120개국 중 44개국은 약사가 직접 백신 접종
약사 교육 전제 제도화 제안…백신 접종 접근성 제고 효과 기대
의료계는 반대 입장…“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 어려워”

기사승인 2025-10-14 06:00:16
서울 종로구 보건소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약국에서도 백신을 맞을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예방접종 건수의 70% 이상이 약국에서 투여되는 등 해외에서는 약사의 백신 접종이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다만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4일 한국임상약학회지에 따르면 이정연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학회지 최근호에 게재한 ‘약국 기반 예방접종 인증교육 도입과 직능 변화의 신호’ 논문을 통해 약사의 백신 접종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약사법과 감염병 예방법은 약사 역할을 백신 보관과 분배, 상담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러한 탓에 코로나19 유행 당시에도 약사는 백신 접종 대안 인력 논의에서 배제돼 있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의료인력 부족과 업무과중, 접종 지연, 백신 기피 등 공중보건 위기가 반복됐음에도 약사는 대안 인력으로 고려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반면 해외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약사의 역할이 빛을 발했다. 미국에서는 전체 성인 코로나19 예방접종 건수의 70% 이상이 약국에서 투여됐다. 영국에서는 2023년 기준 코로나19 백신 투여 건수의 46%가 약국에서 접종됐다. 호주의 경우 국민의 약 47%가 약국 예방접종을 선호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미 약사의 백신 투여가 제도화된 곳도 많았다. 세계약사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세계 120개 참여국 중 56개국이 약국 기반 예방 접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44개국은 약사가 백신을 직접 투여하고, 26개국은 처방권을 가지고 있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필리핀이 지난 2014년부터 약국 기반 예방접종을 허용했고, 네팔과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중동 국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7월부터 3곳의 약국에서 독감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을 시작했으며, 약국 기반 예방접종 확대 가능성을 평가하는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의료계 반대는 넘어야 할 산이다. 해외 대부분의 국가가 법적 제한과 의료계 반대, 약사 직능에 대한 신뢰 부족 등으로 마찰을 빚었다. 미국도 처음에는 의료계와의 역할 분쟁이 있었지만, 1996년부터 약국 기반 예방접종 인증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해 2019년 기준 약 36만명 이상의 인증 교육 약사를 확보하고, 단계적으로 법을 개정해나갔다. 이후 2009년 독감 백신, 2020년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약사 참여가 대규모로 허가됐다. 현재 미국의 모든 주는 성인 대상 폐렴 구균 백신, 독감 백신, RSV(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대상포진 백신에 대한 약사 참여를 허용한다.

이 교수는 한국도 이와 같은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각 국가의 사례를 보면 공통적으로 약사회를 중심으로 정부 기관의 협조를 얻어 정부 주도의 단계적 법 개정을 이끌어 내고, 약사 사회 내부적으로는 교육 프로그램 제공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며 “(한국도) 지속적인 교육 개발과 약사들의 적극적 교육 참여는 약사의 예방접종서비스 참여와 공중보건에서의 직능 확장의 준비기간을 단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사가 예방 접종을 할 경우 △예약 없이 접종받을 수 있는 접근성 △유연한 운영 시간 △국가 감염병 관리 부담 경감 △미접종자 감소 등 다양한 이점을 제공해 결과적으로 예방 접종률 향상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에서도 약국에서 백신 접종에 대한 논의가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약사회는 지난달 1일 미국약사회와 약국 내 백신 예방접종 교육 등에 대해 협력을 추진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미국약사회의 예방접종 교육 및 인증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협력 모델 개발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의료계와의 시각차는 여전히 크다. 대한의사협회는 약사의 백신 접종 과정에서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가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김재연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백신 접종은 아나필락시스 쇼크와 같은 예측 불가능하고 치명적인 응급상황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약학 교육 과정에서는 응급의학 훈련을 받지 않는다. 적절한 응급 장비와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약국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는 곧바로 환자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등 해외 사례는 광활한 영토와 의료 사각지대라는 특수한 배경에서 파생된 것으로, 한국의 현실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다”면서 “백신 접종은 의료법 제27조에 의거해 오로지 의료인만이 수행할 수 있는 배타적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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