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려움에 밤새 뒤척이고, 참지 못해 긁은 자리마다 피부는 상처와 결절(덩어리)로 얼룩진다.” ‘결절성 양진’ 환자의 이야기다.
결절성 양진은 출혈과 미란(피부 벗겨짐)의 악순환이 반복되며 환자를 괴롭힌다. 아토피피부염이나 습진과 증상이 비슷해 오인하기 쉬워 환자들은 수년간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는 ‘진단 방랑’을 겪기도 한다. 환자들이 적정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사회적 인식 제고와 함께 지원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결절성 양진은 피부질환 중에서도 증상이 심하기로 악명 높은 질병이다. 아토피피부염이나 습진처럼 염증성 병변을 보이지만,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돌출된 결절이 피부 전반에 퍼지고, 참기 어려운 가려움이 수년간 지속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흉터와 색소침착은 피부 손상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외모와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동시에 우울, 불안, 사회적 고립을 동반하며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수면장애와 집중력 저하로 인해 학업과 업무 수행은 물론 일상적인 대인관계까지 크게 손상된다.
결절성 양진은 극심한 가려움과 함께 딱딱하게 솟아오른 결절성 병변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정확한 발병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경과 면역계의 조절 이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IL-4, IL-13과 같은 염증 신호가 피부 신경 말단을 지속적으로 자극해 참기 어려운 가려움을 유발한다.
이러한 염증 신호는 신경 섬유의 과민화를 초래하고, 긁음으로 인한 피부 손상이 다시 염증을 강화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계속되는 자극으로 피부에 결절을 형성하고 가려움이 6주 이상 지속되며, 긁고 뜯는 일이 반복돼 결국 상처와 흉터가 깊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절성 양진이 무서운 점은 환자의 삶 전반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환자 10명 중 8명 이상이 6개월 넘게, 절반 이상은 2년 이상 지속적인 극심한 가려움에 시달린다. 특히 증상은 밤에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어 수면을 크게 방해한다. 이는 만성 피로와 집중력 저하로 이어지고, 결국 일상 전반의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여기에 피부가 결절과 흉터로 변하면서 외형적 손상까지 겹쳐 환자들은 점차 대인관계와 사회 활동에서 위축된다.
이지현 서울성모병원 피부과 교수는 “결절성 양진은 겉으로는 피부 결절과 가려움으로 보이지만, 환자가 겪는 고통은 염증성 피부질환 가운데 가장 극심한 수준의 가려움이 동반된다. 관련 연구에서도 삶의 질 저하가 우울증이나 만성 신경질환과 유사한 수준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환자들은 수면과 일상 기능을 상실할 뿐 아니라, 치료 지연으로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과 사회적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심각한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결절성 양진의 사회적 인지도는 낮다. 결절성 양진은 아토피피부염이나 알레르기성 피부질환으로 오인하기 쉬워 습진이나 만성 알레르기 등으로 잘못 진단되는 사례가 잦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수년간 여러 진료과를 떠돌기도 한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가려움이나 결절 등 첫 증상 발생부터 확정 진단까지 평균 24.2개월이 걸렸다. 일부 환자는 15년이 지나서야 진단을 받은 사례도 보고됐다.
진단 지연은 단순히 환자의 고통을 장기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반복되는 검사와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의료비가 발생하고, 치료가 늦어질수록 사회경제적 비용까지 커져 환자와 가족의 부담은 가중된다. 미국의 대규모 청구자료 분석 연구에선 결절성 양진 환자의 연간 외래 진료 횟수가 평균 17회로 대조군(8.1)의 두 배 이상이었다. 응급실 방문과 입원률 역시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만약 정신건강 문제나 대사성 질환 등 동반질환 관리가 필요해지면 진료의 복잡성은 배가된다.
이 교수는 “결절성 양진은 피부 표면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환자의 수면·정서·사회적 기능까지 무너뜨리는 만성 전신성 염증 질환임에도 낮은 인지도와 진단 지연으로 환자들의 고통이 길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결절성 양진은 진단 과정에 비해 치료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지난 2023년 12월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의 생물의약품 ‘듀피젠트’(성분명 두필루맙)가 국내 최초의 결절성 양진 치료제로 승인되면서 효과적인 치료 길이 열렸다. 기존 치료는 항히스타민제, 국소 스테로이드, 면역억제제 등이 쓰였지만,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데 그쳤다. 또 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인 염증 경로를 차단하지 못해 환자의 절반 이상이 치료 효과에 만족하지 못했고, 국소 스테로이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는 10명 중 7명 이상(74%)에 달했다.
반면 듀피젠트는 결절성 양진 발병률이 높은 50~60대 환자나 다양한 동반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도 안정적으로 사용 가능한 치료제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3상 임상연구(PRIME, PRIME2)에 따르면, 24주간 듀피젠트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위약군과 비교해 가려움과 피부 결절 수, 병변 면적, 삶의 질 지표(DLQI) 등 모든 항목에서 유의한 개선을 보였다.
문제는 ‘접근성’이다. 두필루맙은 국내에서 정식 허가를 받았음에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수백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형국이다.
이 교수는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이 효과를 알면서도 높은 비용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늦추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는 환자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오진과 진단 방랑 과정에서 불필요한 진료비 지출, 생산성 손실 등 사회적 비용 증가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이 효과적인 약으로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 제고와 함께 두필루맙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