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사태 피해 기업을 중심으로 지난 수년간 제기된 ‘재조사’ 요구가 대법원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키코사태에 대한 금융감독상의 문제점을 점검한 결과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결론 냈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받지 않은 기업에 한해서만 재조사 등 감독부실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행정혁신을 위한 최종 권고안을 발표했다. 혁신위는 권고안에서 “키코사태를 돌아보면서 감독당국은 스스로의 역할 부재를 통렬히 반성하고 특히 소비자보호 강화 및 이를 통한 금융의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키코 사태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면서, 키코에 가입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고 대부분 폐업하거나 법정관리 또는 워크아웃 사태에 처한 사건이다. 피해 기업들은 은행이 가입 기업에 돌아갈 이익은 제한되고 손해는 무한대로 확대되는 잘못 설계된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이에 대해 감독해야할 금융감독 당국에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주장했다.
이에 키코피해 기업들은 은행을 대상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3년 9월 대법원이 “은행이 키코상품을 판매한 것은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해 패소했다. 이후 피해 기업들은 형사소송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부의 재조사를 요구해 왔다.
키코피해 기업들의 요구에 점검에 나선 혁신위는 일단 키코를 판매한 은행과 이를 감독할 당국에 문제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윤석현 혁신위 위원장은 “키코의 사기성, 은행의 부실한 정보 제공, 무시된 추가 증거 등 키코에 대해 여러 의구점이 많다. 혁신위는 키코가 잘못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키코사태는 환자가 병원에 같더니 의사가 검증되지 않은 시약을 처방하고 약국은 그 약의 효과가 좋다고 하자 무분별하게 판매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혁신위는 피해규모가 컸던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분쟁조정을 통한 피해구제를 요청하는 경우, 재조사 등을 통해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 및 재발방지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금융당국에 권고했다. 또 피해기업 중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거나 불법추심 등 2차 피해를 겪는 경우, 금감원 금융애로상담센터를 통해 적극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대법원 판결을 받지않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며, 대법원의 판결을 받은 기업에는 아무런 지원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혁신위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와있어 운신의 폭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동원 혁신위 위원은 “사기성에 대해서 보는 사람마다 전문가 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법원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다. 법원에서 여러 판결을 통해 민사적으로 ‘사기가 아니다’라고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감독 당국이 재조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키코피해 기업들은 혁신위의 이러한 결정에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키코 공동대응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공대위 참가 기업이 200여개 가량 되며, 이 가운데 대부분이 대법원의 판결을 받은 기업들로, 대법원의 판결을 받지 않은 기업은 현재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실망감을 토로했다.
다만 키코피해 기업들은 계속해서 키코사태에 대한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하겠다는 계획이다. 키코 공동대응위원회는 21일 ‘키코 진상조사 촉구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키코 사건 진상조사와 피해자 추천 조사위원을 포함한 키코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을 촉구할 예정이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