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2034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극복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자살 문제 대응이 치료 중심에 머물러 있었다는 문제의식 아래 장기연체자 채무 조정, 실업 장기화 방지 등 근본적인 자살 원인 해결을 위해 범부처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12일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제9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개최하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심의·의결했다.
정부는 2024년 기준 28.3명 수준인 자살률을 2029년 19.4명, 2034년 17.0명 이하로 감소시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한다면 5년 내 자살자 수를 1만명 이하로 감축하고, 10년 내 자살률 OECD 1위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된다. 2022년 기준 자살률 2위는 리투아니아로, 10만명당 17.1명을 기록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11일 사전브리핑을 통해 “자살자 수를 (5년 내) 1만명 이하로 줄이려면 지금보다 30% 가까운 (감축이 필요하다)”면서 “범부처가 선제적으로 총력 대응해야 가능한 (목표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핀란드 등 다른 선진국의 자살예방 대책을 살펴보면, 국가지도자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 지원이 많이 작용했다”면서 “자살예방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해선 각 부처와 지자체가 함께 총력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료 지원에 그쳤던 자살대응책…경제위기·학교폭력 예방도 총력
이전 정부에서도 자살률 감소 목표를 세워왔다. 문재인 정부는 자살예방정책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자살률을 2022년까지 17.0명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온라인 자살유발정보 24시간 모니터링 등을 추진하며 2027년까지 자살률을 18.2명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세우며, 의지를 드러내자 자살률은 점차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2011년 31.7명에서 2021년 26명으로, 17.9%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자살률 감축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이전 자살예방 정책의 문제점부터 살폈다. 파산, 실업, 관계단절 등 근본적인 자살 원인은 해결하지 못한 채 고위험군 긴급 조치, 심리·정서 치료 중심으로만 대응한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자살사망자는 사망 전 평균 4.3개의 스트레스를 복합적으로 경험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정신적 스트레스 외에도 가족, 경제, 직업 등 순으로 스트레스 경험 빈도가 높았다.

이에 각 부처가 모두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번 자살 예방 대책은 복지부를 중심으로 국무조정실, 금융위원회, 교육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경찰청, 소방청 등 14개 부·처·청이 참여했다.
우선 금융 관련 위기요인에 대해 즉각 대응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소상공인·개인의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금융권 장기 연체 채권을 일괄 매입하고 상환능력을 심사해 소각하거나 채무 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불법추심 피해자의 추가적인 피해 방지를 위해 채무자 대리인 무료 선임 지원을 확대한다. 보이스피싱 인공지능(AI) 플랫폼 구축을 통해 선제적으로 피해 예방을 강화한다.
경제적 위기 극복도 지원한다. 대학 졸업 후 미취업 청년을 발굴해 수요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 복지부 주관으로 긴급 생활안정 지원, 생계급여 인상, 위기가구 대상 생필품 지원 등을 추진해 ‘벼랑 끝 서민층’ 보호에 나선다.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서도 힘쓴다. 교육부 주관으로 ‘학교폭력제로센터’를 통한 피해학생 지원을 확대한다. 또 초등학교 1·2학생 간 발생한 경미한 학교 폭력 사안에 대해 심의 이전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한다.
직장 내 갑질에 대해서도 엄정 대응한다. 괴롭힘 예방 교육을 추진하고, 피해자 사망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에는 근로감독에 나선다. 또 지역 노동청에 ‘고용평등상담지원관’을 배치해 고용상 성차별 사건에 대응한다.
취약·위기 상황에 처한 가족에 대해서는 여성가족부 주관으로 상담, 사례관리, 교육·문화 프로그램 지원, 긴급 위기지원 등을 제공한다. 보건복지부는 재난이나 범죄 피해 극복, 중독자 회복 등을 위해서 트라우마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일상회복과 장기적 추적 관찰을 통한 지속적 관리를 제공한다.
특수직군·집단별 정서·심리 지원도 확대한다. 경찰관, 소방관 등 위험직무 종사자의 현장 대응 트라우마 극복을 지원하고, 합리적 교대근무 여건 조성 등을 추진한다. 국방부는 모든 간부 대상 심리검사를 의무 시행하고, 모바일 심리검사 구축,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을 40명 증원해 배치한다.
지역 특성에 맞는 현장 중심의 지원을 위해 ‘풀뿌리 자살예방 전담체계’를 구축한다. 지자체별 ‘자살예방관’을 지정해 지역 자살업무 총괄 책임을 부여한다. 지자체 본청 내 자살예방 전담조직과 인력 보강을 통해 보건소가 모든 자살예방·위기대응 업무를 수행하는 현행 체계를 개선한다.
또한 지역 내 잠재 고위험군 발굴을 위해 시·군·구, 읍·면·동 사회보장협의체에 자살예방분과를 설치한다. 연간 120만명 규모의 복지사각지대 발굴 과정에서 정서·심리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자살예방센터로 연계한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자살예방정책 이행을 위해 지자체 합동평가 지표를 개선하고, 시·도 관계관 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한다.
아울러 정부는 자살예방정책위원회 산하에 범부처 차원 자살 예방·대응 정책을 기획·추진할 ‘범정부 자살대책 추진 본부’를 설치할 예정이다. 자살예방정책위원회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정부위원 12명과 민간위원 11명이 참여해 자살예방정책의 중장기 정책 목표와 추진 방향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이 차관은 “현재 범정부 전담기구에 대해서는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 차관은 “자살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예산과 인력을 확충해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면서 “새 정부에서는 자살을 사회적 재난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정책 의지를 가지고 총력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