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청소년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담임교사나 전문상담교사가 자살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도, 부모 동의 없이는 치료기관 연계가 불가능한 제도 때문이다. 10대 자살률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제도 정비부터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10일 자살 예방의 날을 맞은 가운데 올해 상반기에만 스스로 생을 마감한 10대가 18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분기별 고의적 자해 사망자 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19세 이하 청소년은 1분기(1~3월)에는 79명, 2분기(4~6월)에는 101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명, 11명 감소했지만, 해당 연령대의 전체 인구를 고려하면 여전히 많은 수준이다.
전국 시·도 교육청이 파악한 초·중·고등학생의 자살률은 꾸준히 높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 학생 수는 2020년 2.77명이었으나, 2021년 3.72명, 2022명 3.68명으로 해마다 늘었다. 그러다 2023년 4.11명으로 4명대를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4.31명으로 치솟았다.
마음건강 관련 지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해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이 전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시행한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12.7%에 달했다. ‘자살을 구체적으로 계획했다’고 밝힌 학생은 4.8%,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2.8%나 됐다. ‘최근 1년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27.7%으로 집계됐다.
현재 학교 현장에선 학생들의 마음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지원 정책들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 정서·행동 특성 검사가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매년 이 검사를 실시한다. 온라인·서면 검사와 학교 상담을 거쳐 관심군(일반관리군·우선관리군·자살위험군)을 선별한다. 이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전문기관의 2차 조치를 거쳐 병·의원으로 치료 연계를 한다.
문제는 치료 기관으로의 연계 과정에서 학생이 정신과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동의가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아동의 치료에 대한 결정은 주로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인 보호자가 대신하고 있으며, 법적으로도 아동의 동의 능력이나 치료 거부 능력에 대한 보호조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 담임교사 등이 자살 고위험군이라고 판단하더라도 학부모 동의 없이는 치료 연계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마음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의료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등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홍보위원장인 이연정 순천향대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서·행동평가, 치료비 지원 등을 하고 있지만, 부모가 의료적 개입을 거부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면서 “관심군을 선별해도 치료 연계가 안 된다. 이 가운데 90%는 부모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라고 전했다. 이어 “아이들이 적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초등학생이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상담을 받고 싶다며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료 현장에서는 부모 동의 없이는 진료를 볼 수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며 “고위험군인 학생의 경우, 정신과 의사에게 바로 의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