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한 금융당국, ‘자체 쇄신’ 시험대

기사회생한 금융당국, ‘자체 쇄신’ 시험대

기사승인 2025-09-26 06:00:16
금융위원회. 유희태 기자

금융권을 뒤흔들었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결국 백지화됐다. 여야 대치로 인한 국정 공백 장기화 우려와 경제 위기 극복에 집중해야 한다는 명분이 작용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까지 열었던 금융감독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다”라는 ‘반성론’을 앞세워 자체 쇄신을 다짐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정대는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을 기획재정부(재정경제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원의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을 분리·독립하는 조직개편을 ‘백지화’하기로 전날 최종 결정했다. 지난 6월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돼 넉 달간 금융권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거대 담론은 한순간에 막을 내렸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전날 당정대 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조직개편이 소모적 정쟁과 국론 분열 소재가 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금융관련 정부 조직을 6개월 이상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경제위기 극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백지화 배경을 설명했다.

당정은 정부조직법이 이날 처리돼도 후속입법인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이 야권 반대로 최소 180일간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에 계류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코스피 5000’과 ‘생산적 금융’을 목표로 내건 정부 입장에서 금융 시스템 안정을 해치면서까지 개혁을 밀어붙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도로에 집결해 야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은희 기자

금융당국 직원들은 “당장 큰 시름을 덜었다”는 반응이다. 다만 야간 집회까지 불사했던 금감원 내부에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잘해서 조직 개편을 막았다기보다는, (당정이) 개편을 추진하는 데 무리가 있으니 중단한 것일 뿐”이라며 “이제는 금융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쇄신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국민에게 증명해 보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에 금감원은 이날 아침 집회는 예정대로 진행하되, 투쟁의 상징이었던 검정색 드레스 코드를 밝은 색상으로 바꿔 입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쇄신을 다짐할 전망이다. 앞서 윤태완 금감원 비상대책위원장도 ‘새판 짜기’라는 대안을 제시하며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를 촉구했다. 금감원 내부 업무 프로세스를 전면 재설계해 소비자 보호 기능을 대폭 강화하자는 구상이다. 금감원 비대위는 최근 출범한 ‘사전예방적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TF’를 중심으로, 금융상품의 판매 이전 설계·심사단계부터 사전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추후 국회 후반기 원구성 과정에서 정치 지형이 바뀔 경우 금융당국 개편안이 재추진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여야 원내대표 회동 이후 기자들과 만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관련한 내용은 이번에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간의 민주당 태도를 볼 때 또 우회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의심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일단 이번에는 (개편을) 피했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며 “완벽하게 백지화됐다고 확신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한 금융위 관계자 역시 “내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국회 의석수 등 정치 지형이 바뀌면 이 문제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판”이라며 장기적인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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