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성중공업이 인도 현지에 차단기 공장 증설을 추진하며 글로벌 전력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인도는 세계 3위 전력 생산국으로, 초고압차단기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핵심 시장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은 인도 현지 푸네에 위치한 차단기 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다.
인도는 전력 수요 폭증으로 공급 부족에 직면해 있으며, 송·배전망 확충과 현대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인도 전력망 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초고압차단기가 민간·공공 프로젝트 전반에서 필수 설비로 자리 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초고압차단기는 도심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고도화된 전력 수요처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설비”라면서 “고도의 기술력과 넓은 생산 공간이 요구돼 세계적으로 소수 기업만이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 품목”이라고 말했다.
수출 활로 다변화하는 효성중공업
효성중공업은 인도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회사는 765kV 초고압변압기와 800kV 차단기를 공급하며 미국 초대형 송전망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미국은 데이터센터와 AI, 전기차 확산으로 초대형 전력기기 수요가 급증하고 765kV 송전망이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멤피스 공장 증설을 통해 현지 생산·납기 경쟁력을 확보하고, 변압기·리액터·차단기를 포함한 초고압 풀 패키지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는 2010년 진출 이후 영국, 노르웨이 등에서 품질 신뢰를 쌓아왔고, 지난해에는 프랑스와 초고압변압기 장기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까다로운 인증과 품질 요건이 높은 서유럽 시장에서 의미 있는 레퍼런스를 확보한 것이다. 또 아이슬란드에 국내 최초 디지털 초고압차단기 GIS를 공급했으며, 네덜란드 R&D센터를 통해 디지털 전력기기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효성중공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AI 산업 성장으로 송전망 투자가 활발하지만, 까다로운 인증·품질·납기 조건을 요구하는 시장이기도 하다”며 “레퍼런스를 축적해 고난도 유럽 시장도 제대로 공략해가겠다”고 밝혔다.
효성중공업은 해외 시장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형 전력망(K-그리드) 수출 확대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우태희 대표는 이달 초 열린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위크(KIW) 2025’에서 “민관이 힘을 합친다면 지난해 156억달러(세계 8위)에 불과했던 K-그리드 수출 규모를 2035년까지 300억달러(세계 4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HVDC를 비롯한 차세대 전력기술로 국내 글로벌 에너지 전환을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력망 건설 난항…해외 판로 확대 ‘불가피’
효성중공업 등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국내 전력망 건설 난항’에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세계 수준의 전력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한전을 중심으로 공기업 입찰로 인한 지연과 지역 갈등으로 전력망 구축이 활발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38년 국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가 30TWh(테라와트시)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5년의 3.7배 수준이다. 그러나 강원권 등 일부 지역에서 송전망 구축 관련 지역갈등이 심화되면서 건설 추진이 쉽지 않아 수도권과 지역망을 잇는 전력 체계 구축이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의 ‘K-그리드 정책’도 이러한 상황 가운데 나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7월 브리핑을 통해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구축 방안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그리드 정책은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구축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중심의 분산형 마이크로그리드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정책이다.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인근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 체계를 구현해 전력망 확충 부담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대하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국내 전력망 건설 지연 속에서 해외 투자가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정부가 K-그리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해, 안정적 수익과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해외 진출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안정적인 수익 확보와 사업 추진을 위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현재 불가피한 선택지”라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효성중공업과 같은 국내 기업들이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판로를 확대하는 한편, 국내 전력망 구축 움직임에도 적극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