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치료 후 다시 ‘생존 기로’ 서는 환자들

혈액암 치료 후 다시 ‘생존 기로’ 서는 환자들

조혈모세포 이식 환자 약 50%서 발생
섬유화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어
심평원 약평위 통과…건보공단 약가협상 앞둬
“신속한 급여 등재, 환자 생존권과 직결”

기사승인 2025-10-01 06:00:15 업데이트 2025-10-01 08:32:50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 김성환(서울 강동구·남·48)씨는 혈액암 치료를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지만, 이식편대숙주병이 찾아오며 만성 근육통과 안구건조증을 앓게 됐다. 김씨는 극심한 통증으로 진통제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게 됐다. 약한 바람에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안구 통증과 팔을 절반밖에 들어 올릴 수 없는 근력 저하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아침마다 온몸을 덮쳐오는 근육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입도 제대로 벌릴 수 없어 식사와 치과 치료마저 포기해야 했다. 환자와 가족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혈액암을 극복하고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마쳤지만 이식편대숙주질환(GVHD)을 앓으면서 다시 생사를 건 싸움에 내몰리는 환자들이 있다. 피부는 물론 간, 폐 같은 주요 장기를 굳게 만들어 기능을 상실하게 하는 GVHD는 치료제가 있지만, 비싼 약값에 환자 부담이 크다. 건강보험 급여를 통해 환자들이 실질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GVHD는 조혈모세포 이식이나 수혈을 받은 환자의 약 50%에서 발생하는 중증 자가면역질환이다. 항암 치료만으로 완치가 어려운 혈액암 환자에게 공여자의 골수에서 추출한 조직을 이식했을 때 기증받은 면역세포가 환자의 신체를 이물질로 인식해 주요 장기를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숙주 반응은 구강 점막부터 시작해 피부, 눈, 근육, 신경, 위장 등 전신에 동시다발적으로 침범해 전신 합병증을 유발한다.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에 따르면 GVHD 환자의 약 42%는 진단 당시부터 폐, 입 등 4개 이상의 장기에서 숙주 반응을 겪는다. 간, 폐 관련 숙주 반응은 사망 위험이 60%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섬유화가 한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고,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장기로 확산되기 때문에 GVHD 치료 접근 시기의 차이는 환자의 생존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특히 숙주 반응이 조혈모세포 이식 100일 후에 나타나 만성 GVHD로 진행될 경우 전신 염증 외에도 장기가 굳는 섬유화 현상이 동반돼 주요 장기의 비가역적 손상과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암등록통계(2012~2022년)를 보면 2022년 기준 국내 혈액암 환자는 지난 10년간 49% 증가하는 등 매년 늘고 있으며, 조혈모세포 이식술 건수도 매년 상승해 GVHD 발병률이 증가할 조짐이다. 2023년 기준 국내 GVHD 환자는 약 700명으로 추정된다.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단순한 신체적 불편을 넘어 삶 전체를 뒤흔든다. 10명 중 4명은 극심한 통증으로 강력한 진통제에 의존해야 하고, 반복되는 감염과 입원으로 직장 복귀나 가족과의 일상마저 포기하게 된다. 환자 약 3명 중 1명은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혈액암을 이겨냈다는 성취감마저 무너져 내린다.

한승민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광범위한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이 생길 경우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받거나 삶의 질이 매우 낮아지게 된다”며 “주요 장기의 섬유화는 생명을 위협하는 신호탄이며, 각종 통증,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의 안구 건조와 작열감, 입안 궤양과 삼킴 장애로 인한 급격한 체중 감소까지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GVHD는 효과적인 치료제가 있다. 문제는 한 달 약값만 1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라는 점이다. GVHD 신약인 사노피코리아의 ‘레주록’(성분명 벨루모수딜)은 염증과 섬유화의 주요 원인인 ROCK2 신호전달 경로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면역 반응을 조절하면서 질환 진행을 막는 기전이다. 레주록은 기존 치료로는 호전이 어려웠던 관절, 간, 폐 같은 핵심 장기에서도 의미 있는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 실제 1·2차 치료를 경험한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에서 75%의 높은 전체 반응률을 보였으며, 52%의 환자에서 유의미한 삶의 질 개선 효과도 확인했다.

레주록은 지난해 8월 국내 허가를 받고 같은 해 11월 비급여 출시돼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협상을 앞두고 있다. 순조롭게 절차가 진행될 경우 연내 급여 등재가 기대된다.

한 교수는 “GVHD는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면 환자의 생존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지기에 혁신적인 치료제를 빠르게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벨루모수딜의 신속한 급여 등재는 암을 이겨냈지만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중증 환자의 생존권과 직결된 사안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를 적절한 시기에 사용할 수 있어야 환자의 사회 복귀가 가능하고,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의료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라며 “혈액암을 이겨낸 환자들이 마지막 관문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벨루모수딜의 급여 등재가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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