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이상기후가 이어지는데, 과연 ‘지속 가능한 미래’가 가능할까.” 대학생 이민지(24)씨는 기후 위기 뉴스를 볼 때마다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는 “뉴스를 보면 더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 기후 위기가 더 심각해진다면 취업이나 진로 고민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 같아 의욕이 사라진다”고 털어놨다.
되풀이되는 ‘역대급’ 폭염과 한파, 기록적인 폭우와 산불은 이제 일상이 됐다. 급격한 기후변화 속에서 미래를 불안해하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런 현상상은 ‘기후우울증(eco-anxiety)’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가 낳은 새로운 불안, 기후우울증
기후우울증은 지난 2017년 미국심리학회가 정의한 개념으로, 기후 위기를 지켜보며 느끼는 불안·우울·무력감을 뜻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2년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인간의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를 직접 겪지 않아도 타인의 피해 사례나 언론 보도를 통해 불안을 느낄 수 있다. IPCC는 이를 ‘대리노출’이라 부르며, 잠재적 위험에 대한 불안 역시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기후변화와 정신건강의 상관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환경부는 ‘한국 기후 위기 평가보고서 2025’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사회적 스트레스가 정신건강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 역시 올해 ‘기후보건 중장기 시행계획’을 발표하며, 기후변화로 인한 정신건강 피해를 예방·관리할 수 있는 체계 구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청년 세대에서 두드러진 기후 불안
기후 불안은 특히 청년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채수미·김혜윤·이수빈 연구팀의 ‘한국인의 기후 불안 수준 및 특성’에 따르면, 만 19~65세 성인의 기후불안 평균 점수는 5점 만점에 1.90점이었다. 이 중 만 19~29세 청년층은 2.02점으로, 60대(1.75점)보다 뚜렷하게 높았다.
연구진은 기성세대가 “걱정된다”, “불안하다”처럼 비교적 완화된 감정을 표현한 반면, 젊은 세대는 기후 변화에 대해 훨씬 강한 불안과 무력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청년이 기후변화가 초래할 미래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김혜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청년들은 기후변화에 가장 오랜 기간 노출될 세대이기 때문에 불안이 잠재돼 있다”며 “고용 불안, 미래에 대한 막연함 등 사회적 요인이 겹치면서 이러한 불안이 더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기후 문제에 깊이 관여한 청년 활동가들 사이에서 불안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누구보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잘 알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현실에서 큰 무력감과 불안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 호소하는 청년들
‘지구를 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중앙대학교 환경동아리 ‘지구인’. 지구인은 플로깅(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나 제로웨이스트 MT(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한 친환경 모임) 등 일상 속 작은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정은기 지구인 회장은 요즘 청년 세대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무력감’을 꼽았다. 정 회장은 “일상의 작은 실천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면서도 “아직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청년 세대는 직접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한계 속에서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감정이 깊어지면 결국 문제 자체를 외면하게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환경 인플루언서이자 ‘지지배(지구를 지키는 배움터)’ 공동대표로 활동 중인 홍다경 대표는 “청년 환경단체를 운영하며 만나는 대부분의 청년이 기후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환경 문제는 여전히 사회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며 “캠페인이나 활동이 무산될 때 특히 큰 무력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홍 대표 본인도 기후우울증을 겪고 있다. 그는 “2020년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 단계’에 들어섰다”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지만, 사실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고 고백했다.
청년으로서 아무런 힘이 없다고 느낄 때마다 그는 함께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10대 친구들이 저와 함께 행동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저라도 멈추지 않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전했다.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기후불안의 순기능을 키워야”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불안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기후 위기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사회적 현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심리 지원을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 부실장은 지난 8월 열린 ‘미래세대 기후불안 극복을 위한 포럼’에서 “기후불안을 기후행동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기후불안 수준은 우려보다는 적극적 관심이 필요한 단계”라며 “이는 기후행동을 촉진하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 부실장은 특히 국가와 지역 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이 기후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일관성 있는 기후 대응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후불안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