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함께 읽고 흔적을 공유하는 ‘교환독서’가 청년들 사이에서 새로운 독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교환독서는 한 사람이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각자가 밑줄이나 메모를 남기며 이어 읽는 방식이다. 색깔이 다른 펜이나 스티커로 서로의 기록을 구분한다. 직접 만나거나 택배로 책을 전달하기도 한다.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나중에 책을 받은 사람은 책의 내용뿐 아니라 이전 독자의 흔적도 함께 따라가게 된다.
지난 24일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썸트렌드를 통해 ‘교환독서’ 키워드 언급량을 살펴봤다. 지난해 11월 첫 언급 이후 포털 뉴스,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네이버 블로그 등에서 언급량은 4831회에 달했다. X에서 리트윗(공유)으로 언급된 양을 포함하면 1만955회다. 지난달 17일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교환독서 소개 영상은 21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취업준비생 이유진씨(25)는 X에서 교환독서를 접한 뒤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임을 꾸렸다. 각자가 고른 책에 메모를 남기고 서로 교환했다. 이씨가 선택한 한 소설책의 여자 주인공은 두 남자 사이에서 결혼을 고민한다. 그중 한 남자는 여자 주인공의 호감을 얻기 위해 목욕탕에 가서 씻고, 세차를 하고 기름까지 넣은 사실을 티 내듯 강조한다.
돌아온 책에는 이 남자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얘랑은 못 사귄다”는 냉정한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귀여운데 왜 그러냐”는 너그러운 반응도 있었다. 이씨는 상반된 메모들을 읽으며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교환독서의 진짜 재미는 솔직한 표현에서 나온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김수경씨는 책 속 주인공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쳤다”, “진짜 이해 안 된다” 같은 말을 거침없이 적었다. 혼자였다면 속으로만 삼켰을 감정을 글로 남긴 것이다. 다시 책을 돌려받았을 때 친구가 똑같은 반응을 남겨둔 것을 보고는 크게 웃었던 기억도 있다. 그는 이런 순간이 “마치 대화를 주고받는 듯했다”며 교환독서가 주는 편안함과 해방감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의 밑줄과 메모는 책장을 덮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23년 독서문화 통계조사에 따르면 20대의 독서 목적 1순위는 ‘재미있어서’(22.8%)였다. 교환독서는 바로 이 ‘재미’를 공유하게 한다.

독서모임 역시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눈다. 하지만 시간을 맞추고 장소를 대여하며 발언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교환독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책만 주고받을 수 있다면 낯선 사람과도 쉽게 연결된다.
A씨(29)는 SNS에서 만난 친구와 교환독서를 시작했다. 책은 편의점 택배로 주고받았다. 그는 “독서모임은 별도로 시간을 내 낯선 사람과 만나야 하지만, 교환독서는 직접 만나지 않아도 편하게 감상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교환독서가 확산하자 출판계도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창비는 지난 5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로 교환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는 지난 7월 독자가 책에 남긴 감상평에 직접 답을 적어 돌려주는 1대1 교환독서를 선보였다.
서울 성북구의 독립서점 ‘땡땡섬’에서는 지난달 18일부터 22일간 교환독서 전시가 열렸다. 서점을 찾은 방문객들은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책을 읽고 자신의 메모를 덧붙였다. 주최 측인 주예진 팀장은 “교환독서가 단순한 책 돌려 읽기를 넘어, 이전 독자의 생각과 시간을 공유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