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이후 겨우 숨통을 틔운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또다시 거센 파도를 맞고 있다. 에어아시아·스쿠트·피치항공 등 해외 LCC들이 한국 노선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내수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업체들은 고환율·고유가에 이어 치열한 가격 경쟁까지 떠안게 됐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해외 LCC들은 한국발 인기 노선을 중심으로 증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남아·일본·대만을 오가는 노선에서 잇따라 공급석을 확대하며 한국 여행객 수요를 적극 흡수하는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운임에 현지 여행 수요까지 결합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고,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해외여행 수요와 맞물려 빠르게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에어아시아는 인천·부산에서 방콕, 마닐라, 세부 등 동남아 주요 관광지를 오가는 노선을 대거 증편하며 한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부 노선은 주 1~2회에서 매일 운항으로 늘려 사실상 국내 LCC들과 정면 경쟁에 나선 모양새다. 저렴한 운임과 단체·젊은 층 수요를 결합해 ‘가성비 항공사’ 이미지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일본 LCC인 피치항공과 싱가포르 LCC인 스쿠트도 마찬가지다. 피치항공은 일본 간사이를 거점으로 서울·부산 노선을 늘리며 일본 여행 수요를 적극 흡수하고 있고, 스쿠트는 싱가포르항공 계열의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천·부산 노선을 확대하며 허브 공항 환승 수요까지 흡수한다.
이외에도 델타항공, 웨스트젯, 에어뉴질랜드 등 해외 항공사들이 잇따라 한국행 노선을 새로 열거나 운항을 재개하고 있다. 단순히 저가 항공권 경쟁에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를 앞세워 국내 LCC와 차별화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다. 파라타항공이 항공기를 도입해 이달 30일 본격 취항에 나서면서 ‘국내 9개 LCC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미국과 같은 숫자다. 하지만 국토 면적과 시장 규모가 미국의 100분의 1 수준인 한국이 동일한 수의 LCC를 운영하는 셈이라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LCC들은 고환율과 유가, 인건비 부담이 겹친 데다 항공권 가격 인하 압박까지 더해져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에 상장된 LCC 4곳(에어부산·진에어·제주항공·티웨이항공)은 모두 올해 2분기 적자로 전환됐다. 적자 전환의 주 원인 중 하나는 항공사 간 경쟁 격화로 인한 항공권 가격 하락이다. 자본 규모와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해외 LCC에 비해, 내수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업체들은 가격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LCC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회복되긴 했지만, 공급이 계속 늘어나면서 항공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낮추는 상황”이라며 “결국 적자가 반복되는 구조라 업계 전반이 공멸 위기에 놓였다”고 말했다.
김광옥 한국항공대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공급 확대가 항공권 가격 안정과 소비자 선택 폭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과잉으로 운임 하락 압력이 커져 국내 LCC들의 원가 부담과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며 “국내 항공사들은 단거리 경쟁에서 벗어나 중장거리·틈새 노선을 개척하고, 서비스 차별화와 부가수익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정부 역시 항공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보고 공항 슬롯 정책과 비용 부담 완화 등 균형 있는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