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가’ 언급도 조심…협상 교착 속 조선업계 ‘숨 고르기’

‘마스가’ 언급도 조심…협상 교착 속 조선업계 ‘숨 고르기’

기사승인 2025-10-15 06:00:06
HD한국조선해양 제공.

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MASGA)가 재원 설계와 집행 구조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양국은 지난 7월 말 상호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큰 틀의 합의를 이뤘지만, 이에 맞교환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약속 이행 방안을 놓고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무역 협정의 세부 내용인 협상을 이어왔으나, 350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재원 조달에 대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 측은 직접 투자와 대출‧보증을 결합한 펀드 조성을 제안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업프런트(현금성) 성격의 펀드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역 협의의 기초가 되는 관세 협상에서 결론이 나지 못하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도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는 앞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대출·보증 패키지와 별도의 에너지 구매 약속을 제시했으며, 이 중 약 1500억 달러를 조선 협력 전용 재원으로 배분해 MASGA의 모태 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이 자금은 미국 내 조선소 신증설, 정비(MRO) 허브 구축, 공급망 재편, 인력 양성 등 현장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재원 조달을 둘러싼 갈등이 병목으로 작용하며, 프로젝트 논의 자체가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최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3500억 달러 대미(對美) 투자 펀드와 관련해 “(교착 상태의) 후속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마스가 프로젝트’가 제대로 시작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관세 협상 추진 상황에 대해 “우리가 어느 정도 내세울 것도 있으니 종합적으로 (대미)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난 8월 발생한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인력 구금 사태 이후 업계에서는 MASGA 추진 과정에서 인력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2일 대한상의 국제통상 위원회에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만나 “미국 시장에 진출 시 초기 운영 인력이 다수 필요하지만, 신속 발급이 가능한 ESTA나 B1 비자는 현지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H-1B는 쿼터 제한과 긴 발급 절차로 제약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어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전문 인력에는 별도 비자를 신설하고 쿼터 확대와 발급 절차 단축과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정부는 업계의 우려에도 신중한 대외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정부가 기업들에 과도한 홍보를 자제하고 상황을 관망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걸로 알고 있다”며 “정부 홍보 요청 자제로 상황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김태황 교수는 “통상 레버리지를 짜내 끝까지 압박하는 이른바 트럼프식 ‘스퀴즈’형 협상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며 “섣부른 현금 약정 확대는 향후 추가 요구를 부를 수 있다는 경계론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면서 단계적 집행을 통해 협상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에 동참하되,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지 않겠다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은 “그간 미국과 같은 선진국과 대규모 해외 진출을 한 경험이 전무하다”며 “트럼프식 리더십과 맞물려 생기는 변동성 높은 상황에서 마스가까지 가는 길이 장기화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선 기자재 업체들까지 진출한다면 이들에 대한 비자 문제까지도 향후 폭넓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는 정부의 후속 조치를 지켜보며, 독자적 준비와 대응을 병행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HD현대는 지난달 미국 해군의 군수지원함 MRO 사업에 본격 착수했으며, 특수선 사업 확대를 위한 대규모 인재 채용에도 나서고 있다. 또한 지난달 18일 HD현대는 현지 조선소 지분 매입부터 조선소 건립 방안까지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고도 밝힌 바 있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지난달 AI 자율운항시스템(SAS)를 검증하기 위한 실증 모델을 성공하며 태평양 횡단의 기록을 인정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마스가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에 비해 비자 문제 등 새로 부각된 이슈에 대한 업계 걱정은 여전하다”며 “신중한 접근과 함께 마스가 관련 추진 상황 보고가 어느 정도 이뤄져야 답답함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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