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외상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국 17개 외상센터 중 6개가량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17개로 나뉜 외상센터 구조는 환자 분산을 초래하고, 인력 부족과 의료진 숙련도 저하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정경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15일 보건복지부 대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재 외상센터 중 일부는 환자가 몰려 과부하로 고통받고, 다른 곳은 환자가 적어 인력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증외상 같은 고난도 의료는 일정 환자 수 이상이 확보돼야 의료진의 숙련도와 진료체계가 유지된다. 외상센터를 처음 도입할 당시에 6~8개의 대규모 센터와 30대의 닥터헬기 체계로 전국 중증외상 커버가 가능하다는 정부 검토가 있었지만, 정치적 고려와 지역 안배 논리 등으로 17개 센터가 분산 배치됐다는 게 정 센터장의 설명이다.
정 센터장은 “이런 구조적 불균형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정부는 10년 넘게 재편을 미루고 있다”며 “정부는 2013년과 2015년에 외상센터 재편을 예고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 사이 중증외상 의료 현장은 간신히 스스로 버티며 체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현장 의료진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인력이 이탈하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 센터장은 “의료진들은 ‘조금만 더 버티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고문 속에 근무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면서 “여성 의료진의 경우 출산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 외상 분야를 떠난다”고 토로했다.
이어 “코로나19 시기와 의정 갈등 속에서도 외상센터는 버텨왔지만, 최근 의료진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라며 “외상체계의 골든타임이 각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시스템 전체에도 이미 닥쳐 있다”고 꼬집었다.
외상센터를 담당하는 주무부처가 수차례 바뀌고, 담당 공무원이 계속 교체된 것도 중증외상 환경 악화 원인으로 꼽혔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정 센터장은 “외상체계는 단순히 응급의료 문제가 아니라 지역 필수의료, 중증의료와 맞닿아 있는 국가 보건안보의 핵심 인프라”라며 “이제는 개별 병원이나 의료진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일관된 정책과 지원으로 국가 차원의 외상체계 개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외상체계 개편 방향에 대해 “선진국들은 환자 발생 규모, 지역 이송체계, 병원 역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외상센터를 배치하고, 질 관리와 평가 시스템을 통해 체계를 강화한다”며 “우리도 데이터 기반의 평가와 질 관리, 맞춤형 외상센터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부는 외상센터 개편에 나서겠다고 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내년에 2개 센터를 레벨1 수준의 거점 외상센터로 집중 육성할 계획”이라며 “관련 예산이 반영돼 있어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