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했다. 올 하반기 7월과8월에 이어 3차례 동결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선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집값 상승세가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만큼 일단 부동산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50%로 유지하기로 했다. 앞서 한은은 2021년 8월부터 2023년 1월까지 기준금리를 0.5%에서 3.5%로 인상한 뒤 1년 7개월간 동결 기조를 유지했다. 이후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연속 금리를 인하하며 완화 기조로 전환했다. 올해 들어서는 1월·4월 동결, 2월·5월 인하에 이어 7월·8월·10월 세 차례 연속 동결 결정을 이어갔다.
부동산·환율·소비심리 회복 등 종합적 판단
금리 동결 배경에는 단연 수도권 부동산 시장 불안이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도권 주택시장이 여전히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정부가 추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만큼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세가 완전히 꺾이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금리를 인하할 경우, 집값과 가계대출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0월 둘째 주(13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추석 연휴 전(2주 전)보다 0.54% 올라 상승 폭이 0.13%포인트(p) 확대됐다. 이 총재는 “금리를 인하하면 투자 비용이 줄어들어 부동산 가격 상승을 가속화할 위험이 있다”며 “가계부채는 정부의 새 정책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주시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가격이 ‘내려야만’ 안정이라고 보지 않고, 성장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둔화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율 불안도 금리 동결의 또 다른 배경으로 거론됐다. 미국의 3500억달러 규모 대미(對美) 투자 요구와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로 원·달러 환율은 최근 한 달 가까이 1400원대를 웃돌고 있다. 내국인의 해외 투자 증가 등으로 외환시장에서 달러 실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난 점도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총재는 “단기간 내 환율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만큼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 여지가 있는 지 유심히 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한·미 관세 협상이 합리적으로 타결된다면 불확실성이 줄고 환율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수출 호조세와 소비심리 회복으로 금리 인하 압박이 줄어든 점도 금리 동결에 영향을 미쳤다. 8월 경상수지는 91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8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28개월 연속 흑자 행진으로, 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긴 흑자 흐름이다. 같은 달 상품수지도 94억달러 흑자를 내며 29개월째 흑자를 이어갔다. 8월 기준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소비와 수출 중심의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필요성이 이전보다 낮아졌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한·미 금리차 축소도 이번 금리 동결 결정에 여유를 더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면서 양국 간 금리차는 1.75%p로 좁혀졌다. 연준은 오는 29일(현지시간) 열리는 FOMC에서도 추가 0.25%p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경우 정책금리 상단은 4.0%로 낮아지고, 한·미 금리차는 1.5%p까지 축소된다. 이는 최근 불안했던 외환시장 부담을 완화할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11월 금리 동결 유력…금리 인하 재개 여지 있어
금통위는 오는 11월 27일 올해 마지막 금리 결정 회의를 연다. 금통위는 회의까지 약 한 달간 각종 경제지표와 시장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최종 판단을 내릴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올해 마지막 회의(11월)에서도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10·15 부동산 대책의 효과를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창용 총재가 집값 안정화를 최우선 과제로 언급한 만큼 1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하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욱 KB증권 연구원도 “부동산 대책 효과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10월과 11월 회의 간격이 짧다는 점 역시 동결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고, 2명은 동결을 주장했다. 지난 8월과 비교하면 금리 동결 의견이 한 명 더 늘었다. 다만 이 총재는 “금리 인하 기조는 유지되지만, 속도와 시기를 조정한 것”이라며 인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 총재가 이같은 언급을 한 것은 성장 회복을 위해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가야 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금리 인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경기 둔화 우려는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새 정부 경제성장 전략’에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9%로 제시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잠재성장률(1.9%)의 절반 수준이다.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이 높다고 해서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금리 인하를 무조건 미룰 수는 없다”며 “성장과 금융안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