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성남시장 재직 시절 주도했던 민간 채무탕감 기관인 ‘주빌리은행’이 재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위원회가 시민단체 등 비영리법인에도 개인금융채권 매입을 허용하기 위한 규정 개정에 착수하면서다. 다만 비영리법인의 채권관리 능력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1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코로나19 대출 조정·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배드뱅크는 은행 등 금융사에서 대출자산을 이전받아 채무를 조정하고 채권을 소각하는 기관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대선후보 시절부터 배드뱅크 설립을 공약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채무 상환이 어려운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의 빚을 탕감해 재기를 돕겠다는 취지다.
이 가운데 금융위는 지난 5일 ‘개인금융 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 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 변경을 예고했다. 개인금융 채권을 매입할 수 있는 자격을 시민단체 등 비영리법인으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기존에는 은행이나 2금융, 등록 대부업체 등 금융회사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으로 자격을 제한했다.
감독규정 개정 움직임에 비춰볼 때, 이재명 정부가 비영리법인 형태의 배드뱅크를 적극 검토 중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과거 성남시장 시절 주도한 ‘주빌리은행’ 모델의 재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시 비영리법인을 활용하는 형태의 주빌리은행은 부실채권을 기부받거나 원금의 3~5% 수준으로 매입한 뒤, 채무자가 원금의 7%만 상환하면 나머지 채무를 탕감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다만 법적 한계로 인해 직접 채권 매입이 막혔고, 별도 대부업체를 설립해 채권 매입을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유튜브 채널 ‘롤링주빌리’ 영상에서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줄 때, 채무자가 빚을 안 갚을 것을 예상해서 그걸 이자라는 이름으로 회수한다. 이미 손실을 계산해 놓은 것”이라며 “1차 대출기관 또는 채권기관들은 이미 비용으로 다 회수한 상태라서 팔더라도 손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우려도 일축했다. 이 대통령은 “장기 연체 채무자 대부분은 돈을 갚고 싶지만 못 갚는 사람”이라며 “이들을 구제하지 않으면 고통만 가하고, 채권자만 부당한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좀비 채권’ 정리는 정부 복지지출을 줄이고 시장 노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현실화 단계에서는 재원 조달과 비영리단체의 관리 역량이 변수로 꼽힌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영리법인의 채권 매입 허용은 그동안 과도하게 제한돼 있던 시장 접근성을 일부 완화하는 조치로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무분별하게 진입을 허용할 경우, 영리 목적 단체들이 ‘비영리’를 표방하며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민감한 채무 문제에서 분란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비영리법인의 진입 요건 등과 관련해 세심한 제도 설계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주빌리은행은 이름만 은행일 뿐, 리스크 관리에 한계가 있다”며 “과거처럼 싸게 채권을 매입하기 어려운 시장도 변수”라고 진단했다. 또 “금융사가 아닌 시민단체 등 비영리법인의 개입도 제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융사는 전문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지만, 시민단체 등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제도 안착을 위한 법적 보완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런 모델이 제도화되려면 ‘개인채무자 보호법’ 같은 입법이 필요하다”며 “전문성과 관리 체계 면에서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