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지역의사제도, 공공의료사관학교(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의료계가 반발하면서 의정갈등이 다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오는 10월 ‘국민 참여 의료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체계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22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출입기자단 정책간담회를 갖고 “지역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필수의료를 확충하며,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세 가지 방향이 서로 연계돼 있다”며 응급의료체계 개편부터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저평가된 수가 조정 등 의료개혁 과제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복지부 장관, 문진영 대통령실 사회수석 등은 최근 당정대 협의를 열고 ‘필수의료 강화 및 지역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안’(필수의료 특별법)과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지역의사 양성법)을 이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했다.
지난달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필수의료 특별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필수의료 강화와 지역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해 시행하고, 지역·필수의료 인력 양성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게 하기 위한 법이다. 특히 인력 양성을 위해 의대 입학생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선발하고, 이들이 지역·필수·공공의료와 관련한 과목을 추가로 이수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는 이들에게 입학금과 수업료 등 경비를 지원하고, 이렇게 배출된 지역의사는 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의료기관에서 10년간 복무해야 한다.
공공의대나 일반 의대들이 일정 비율을 공공의사 선발전형으로 뽑아 관련 과목을 추가 이수하게 하고 학비를 지원한 뒤 10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겼다. 정부는 이르면 2028년 신입생부터 의대 신입생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공공의대 첫 신입생 모집 시기는 밝히기 어렵지만, 올해 가능하면 관련 법안 근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지역의사제 역시 법을 제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법이 마련돼도 하위법령을 준비하고 지역의사 지원 예산 확보도 필요해 구체적인 시행 시기는 알 수 없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정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일각에선 의협이 또다시 ‘투쟁 모드’로 돌아서 이제 막 봉합된 의정갈등이 다시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하지만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며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내겠단 입장이다.
정 장관은 “당장 시급한 과제들이 많다. 그 중 응급 상황인데 진료를 못 받는 문제는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며 “중증 환자가 응급실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배후진료 역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응급의료기관을 지정할 때 배후진료 역량을 고려하고, 그에 맞는 적정 보상체계를 붙이는 게 가장 핵심일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응급 중증질환을 볼 수 있는 지역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환자가 생겼을 때 바로 이송할 수 있는 이송·전원체계를 얼마나 잘 갖추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산부인과의 경우엔 민사·형사소송 문제로 인해 분만 인프라가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의료사고에 따른 민사·형사소송 개편도 시급하게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비급여·실손보험도 개혁해나갈 계획이다. 정 장관은 “현재 우리나라 의료비가 초고령화로 인해 가파르게 증가하며 지속 가능성과 효율성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낭비되고 있는 비급여·실손보험 문제를 구조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중장기 과제다”라며 “전체적인 거버넌스들은 국민 참여 의료혁신위원회를 통해 논의할 예정으로 10월 정도에 구축 방향에 대한 보고가 있을 예정이다”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졌던 의료개혁에 건강보험 재정 20조원 투입,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 지역 포괄 2차병원 육성 지원 등의 정책은 그대로 이어갈 방침이다. 정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추진된 저평가된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 지원 등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어 재정 투입 역시 계획대로 이뤄질 예정”이라면서 “지역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소아 인구 자체가 줄고 있어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국가 예산을 투입해 인프라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 내용이 담긴 필수의료 특별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필수의료 기금 내지는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라는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는 내용이 법안에 담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재원에 대한 부분이어서 기획재정부와 협의가 필요하지만, 지역의료를 육성할 수 있는 재원 확보가 굉장히 중요한 만큼 법 개정을 관철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민 참여 의료혁신위는 위원 인선을 진행 중이다.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은 “국민 참여 의료혁신위 출범이 본래 예정보다 한 달 정도 지연되고 있다. 이제 국정과제가 마련됐고 추진 체계 개편 방향이 검토 중으로, 다음 달 초까지 관련 근거가 되는 대통령 훈령이나 인선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가급적이면 연말에서 내년 초가 넘지 않게 정부의 의료혁신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피력했다.
지난 정부 3차 의료개혁 실행방안에 담겼던 개원 면허제, 미용시장 개방 등과 관련해선 “미용시장을 타 직역에까지 개방한다는 관점보단 필수의료 인력이 비급여 등 다른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면허 관리 선진화 차원에서 검토됐던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은 연말쯤 의료혁신 로드맵에 담아 발표하겠다고 했다.